금요일 저녁 하루종일 집에서 대충 요기한 아내를 위해 외식을 하자는 나의 제안을 남편이 응해 주어서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몇 개의 맛집 주소를 보냈는데 남편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오늘은 집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 보자고 했다. 주변 주차사정이 좋지 않아서 남편은 음식점이 밀집한 골목길을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맛있어 보이는 식당을 발견하더라도 주차할 곳이 없으면 그 곳을 떠야 하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 고기구이집은 공기가 안 좋아서 패스, 분식점으로는 아쉬워서 패스, 손님이 없어 보이니 음식의 맛이 보장할 수 없을 거라고 패스, 너무 복잡하다고 패스... . 그러다가 끼니를 놓칠 지경이 되어 결국 나의 결단으로 실내가 깔끔해 보이는 보쌈 및 족발식당에 들어갔다.
35,000원이라는 보쌈 중사이즈는 가격 대비 반찬도 허술했고, 깔끔한 우리 입맛에 맞지도 않았다. 시들어가는 상추 몇 장, 초라한 부추 무침, 윤기없고 냄새도 살짝 나는 고기에 별도로 시킨 달걀찜은 양만 많고 퍽퍽했다. 남편은 내가 만들어 주는 부드러운 달걀찜이 그리운 눈치였다. 밥을 1인당 한 개씩 시켜 놓고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 나는 밥을 남겨두고 맥주 1병을 시켰다. 남겨 놓은 고기가 남은 밥보다 더 아깝다는 의견일치를 보고. 술안주로라도 되게끔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시원한 맥주가 밥보다 더 잘 넘어갔고 우리는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식당을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왔고 작은 3단 우산을 쓰고 집까지 가는 길은 다소 멀었다. 아! 이 상황을 어떻게 하지? 사실 내가 문자로 보낸 주소의 맛집이 몇 배는 가격도 싸고 이 곳보다 더 좋았을 거라고 퍼부어대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나는 감사를 배웠으니 달라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역시 식당은 눈으로 보고 고를 수는 없는 것 같애. 앞으로는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식당으로 가자구.”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 바람에 오늘 목표 걸음을 채웠어. 밥반찬은 그랬지만 술과 안주로는 먹을만하던데. 덕분에 우리가 늘 궁금해하던 이 구역의 먹자골목은 분석이 끝났네. 우리하고는 안 맞는 걸로"
"당신 말이 맞아. 그래도 당신의 오늘 하루 목표 걸음수는 채웠네"
아마 당분간 남편은 나의 집밥에 감사하리라. 은근한 기쁨이 마음속에서 솟았다.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면서 자칫하면 누군가가 마음을 상해서 각자 걸어갈 뻔한 그 날의 외식은 훈훈하게 우산 속 데이트로 마무리되었다. 선선한 가을비와 시원해진 밤거리를 오랫만에 함께 걸으면서 감사할 일이 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둘 중 누구도 설거지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을. 집에 도착하면 바로 커피를 한 잔씩 뽑아들고 소파에서 함께 편안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이 또 다른 감사가 되리라는 깨달음이 왔다. 감사는 태도의 변화임을 느끼고 그 달라진 마음 쓰임에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일상이 바뀔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의 감사 프로젝트에 남편도 동참시키고 싶어서 불쑥 물어보았다.
”여보! 오늘 뭐 감사할 거 없어?
“아니 뭐 별로.“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아니 좋은 일도 없고 뭐 특별히 안 좋은 일도 없어"
"아이구. 그럼 됐네. 안 좋은 일이 없는 게 감사할 일이잖아. 오늘 어디 아픈데 있어?"
"아니 뭐 별로"
“그거야. 아침에 일어나서 아픈 데 없으면 행복한 날이야. 안 그래? 당신 무릎이 좀 아프다고 했었잖아”
“뭐 그러자면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