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지금 묵고 있는 손님이 어제부터 3박을 예약해 두었기에, 내일까지는 방해받지 않는 자유 시간이 생겼다.
"오늘은 뭘 해볼까?" 하다가, 오랜만에 극장 구경을 가기로 했다.
민박집을 운영하다 보면 시간이 많은 것 같아 보여도, 사실 시내로 나가 극장에 앉아 있는 일은 쉽지 않다. 체크인·체크아웃이 없는 온전한 빈 날이어야 마음 편히 다녀올 수 있다.
그런데 3박이라니. 갑자기 하루가 통째로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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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방해금지 모드를 해제했는데, 부재중 전화가 꽤 많이 와 있었다. 확인해 보니 모두 같은 번호에서 걸려온 일반전화였다.
손님은 아닌 것 같고, 왜 우리 지역 일반전화가 이렇게 많이 와있을까? 무슨 일인가 싶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뚜뚜—. 신호음이 한참 울린 뒤, 낯선 어르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누구신데요?”
“저… 여기는 00 민박집입니다.”
“아, 민박 사장이구만! 아까 한참 전화했어.”
평소 인사하고 지내는 마을 어르신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다. 세 명이 여행 왔는데, 예약한 당사자는 집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은 마을 구경을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대문 비밀번호를 몰라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친구를 깨우려고 대문 밖에서 불러도 보고, 문도 두드려 봤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안에서는 친구가 세상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휴대폰까지 집 안에 두고 나와 비밀번호를 물어볼 방법도 없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결국 마을회관까지 찾아가 전화를 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문 밖에서 친구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서 있었을 그 모습을 떠올리니, 조금 웃기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극장에 있었고, 그 전화마저 받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집에서 자던 친구와 통화가 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민박집을 수리할 때 프라이버시를 위해 담을 높이고, 대문을 비밀번호 방식으로 바꾸고, 손님이 있을 때 초인종이 울리지 않도록 아예 초인종도 없앴다. 그게 오히려 손님에겐 장벽이 되었던 셈이다.
오랜만에 찾은 휴식이었는데, 하루를 망친 기분이라 느낌표 가득한 푸념이 혼잣말로 튀어나왔다. 한편으론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을회관까지 찾아갔을 손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는데, 체크인 예정 손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출입 방법은 이미 다 안내해 드렸으니, 알아서 들어가겠지 생각하며 잠시 외출을 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휴대폰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나 쌓여 있었다. 번호를 확인해 보니 오늘 체크인하는 손님이었다.
온 세상 근심들을 삼킨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보니, 대문 비밀번호가 열리지 않아 여러 번 시도하다 결국 나에게까지 연락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문은 결국 열리고 들어가셨지만, 통화 너머로 전해진 목소리에는 아직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손님이 들어와 있을 때나 들어오기 전이나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삶이 되어버렸다.
시골로 내려오면 휴대폰에서 조금 멀어지는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외출할 때면 일부러 가방에 넣어두고 한참 꺼내보지 않기도 했다.
민박집을 시작하고부터는 휴대폰이 거의 부적처럼 손에 들려 있다. 혹시라도 전화가 온 건 아닐까 싶어 합격문자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괜히 화면을 한 번 더 켜보게 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가도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한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도 가끔 스마트워치 화면을 확인하고, 진동이 울린 건 아닌지 괜히 손목을 한 번 더 내려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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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민박집을 하면 여유롭게 사는 삶일 거라고 생각한다. 손님이 없는 날에는 바다를 보러 가고, 낮에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그런 생활을 떠올리기도 한다. 물론 그런 순간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긴장도 함께 따라다닌다.
처음 민박집을 예약 사이트에 등록할 때가 떠오른다. ‘호스트에게 연락 가능한 시간’을 입력하는 칸이 있었는데, 나는 고민도 없이 24시간을 체크했다. 그때의 나는 마치 24시간 해장국집 사장님 같은 마음이었다. 언제 찾아와도 불을 켜고 맞이해야 하는 사람처럼.
민박집의 대문은 비밀번호로 닫혀 있지만,
내 마음은 24시간 열려 있어야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