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하키 리그를 떠나 HPL로
새로운 여정의 시작
캐나다에서 하키 없는 삶을 살았더라면, 아마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다른 삶을 살았으리라. 지금껏 언급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처음 아이가 하키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나의 의지도, 아이의 의지도 아니었다. 그저 캐나다에 왔다가, 어쩌다 같은 반 아이 덕분에, 엉겁결에 등록을 마친 상태였다.
둘째 아이의 같은 반에 있던 캐나다인 아이가 하키를 하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의 엄마가 적극 권유해서 우연히 등록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얼마나 순진무구(?)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었냐면, 일주일에 몇 번 오는 건지 코치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키 팀을 위해, 나의 시간과 노동과 자본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던 상태였다. 오죽하면, 처음 하키를 어떻게 하든 배우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동네에 있는 올림픽 링크에서 하는 어린아이 대상 하키 프로그램에 등록했는데, 기어를 제대로 준비해 가지 못했다. 하키 스틱 대신, 볼 하키 스틱을 가져갔었을 수준. 수업이 끝나고 코치가 와서 스틱을 다른 걸 사야 한다고 알려줘서 부랴부랴 숍에 가서 아무 스틱이나 샀다. 오른손잡이용으로. 지금은 플렉스와, 킥포인트, 블레이드, 재질, 회사, 등등 모든 걸 따지는 까다로운 하키 맘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하키와 아주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러다 점차 적응하고, 아이가 하키에 진심을 더해가며, 나도 모르게 점점 열과 성을 보태다 지금은 열성 하키맘이 되어 버렸다. 하키 없이 어떻게 사냐고? 잘 모르겠다. 무척 심심하고 내내 비 오는 밴쿠버의 겨울을 조용히 집 안에 콕 박혀 우울하게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하키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많이 커져 버린 상태다. 물론, 내가 이럴 정도니 둘째 아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일까 싶다. 둘째 아들은 하키를 위한, 하키에 의한, 하키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와 마이너 하키 리그에서 H2부터 U13 첫 번째 해까지 보냈는데, 솔직히 말하면 마이너 하키는 나에게 그다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여러 에피소드가 있지만, 지금 풀기엔 아직 해당 협회를 나온 기간이 길지 않아 다 말하기 어렵다. 그저 시련과 마음고생이 좀 컸다는 수준으로 대충 정리하고자 한다. 이런 마음은 둘째 아들도 같다. 아니, 어쩌면 아이에겐 지난 마이너 하키 기간은 나보다도 더 큰 상처와 아픔을 줬던 시기일 것이다. 다만,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진 터라, 아이는 이런 시련이 자신을 키웠다는 마음으로 더욱더 연습에 매진했고 매해 조금씩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항상 지난해보다 더 나은 올해의 기량을 보이며 눈에 띄게 실력이 늘어갔다.
아이는 팀에서 아이스 타임이 주어지지 않으면,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더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리고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족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가 실력이 늘게 된 것은 자신의 과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같은 스프링 하키 팀 친구들과 달리 혼자만 A3에 덩그러니 떨어진 때에도, 3번째 라인에 떨어져 빙판에 제대로 서보지 못한 것도 결국 모두 자신에게는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엄마, 저는 운이 좋았어요. 아니면, 제가 하키에 이렇게 진심이 안 됐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신이 지금처럼 실력이 늘 수 있었던 것에 지난 기간의 경험이 고맙다고 했다. 이런 면은 좀 감동이기도 했고, 아이에게 배우기도 했다. 나는 아이보다 속이 좁았나 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H2 시절, 반을 나눈 링크에서도 잘하는 아이 그룹과 못하는 그룹 아이 중 못하는 그룹에 속해 하키를 시작했던 아이는 과거를 뒤로 하고, 처음 대표팀(rep) 시절 A3에서 시작했던 수준을 벗어나 2년간 A1으로 활동하다 HPL 중에서도 꽤 잘하는 팀에 초청을 받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기회라 이동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아이가 원하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 결국 마이너 하키를 나와 올 시즌은 HPL(High-Performance League)에서 하기로 했다.
무언가 결정할 때, 신중하지만 결코 과하게 고민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던 나였지만 아이 일이기에 정말 많은 고민이 되었고, 여러 주위의 감사한 분들에게, 선배 아이를 키우는 분들에게 여러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큰 도움을 받았다. 아직 시즌 시작 전이지만, 지금까지는 후회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새로운 시작은 어쨌든 참 좋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동기를 주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불어넣어 준다. 올해는 어떤 시즌이 시작될지 무척 기다려진다.
아, 잠깐! HPL(High-Performance League)은 무엇이고 마이너 하키 리그는 무엇이냐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마이너 하키 리그는 하키 캐나다 소속으로 보통 지역 사회 중심으로 운영된다. 반면, HPL은 엘리트 수준의 경기력을 개발하고, 프로나 상위 리그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모이는 편이라, 좀 더 경쟁적이고 치열한 분위기다. 그리고 우리도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관련한 정보는 다시 다루겠지만, 덕분에 나는 더 멀리, 자주 운전을 해야 하며, 더 열심히 아이의 서포트에 힘써야 하는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마이너 하키와 HPL의 차이를 발견하는 쏠쏠한 재미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벌써부터 큰 차이를 경험 중이긴 하지만, 연재를 하며 하나씩 풀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