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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융이 Apr 01. 2018

소유냐 존재냐

나는 어딘가에 소유로가 아니라 존재하고 싶다


“여자 친구 있어요?”

“아니요. 없어요.”


요즘 제임스에게 가르치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의 주변인에 관한 것인데, 이게 참으로 오묘하다. 그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외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의 문화적인 특징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여자 친구나 강아지 등의 주변인 혹은 주변의 생물체에 관한 질문을 할 때, 영어로는 ‘have’를 쓴다.  


“Do you have a girl friend?”

“Do you have a dog?”
 
  

같은 식으로. 그런데 이걸 한국어로 가르치는 과정에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를 크게 느꼈다. 우리는 그냥 존재 자체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더라.  


“나는 여자 친구가 있어요.”

“나는 강아지가 있어요.”


라는 식으로. 왜 그럴까 문득 궁금해졌다. 가지고 있다는 소유의 표현이 맞는 건지, 아니면 존재한다고 그냥 설명하는 것인 무엇인지 잠시 나 스스로의 카오스 및 생각의 시간을 갖게 되기도 했다. 한국이 좀 더 겸손해서?

 

중국어에서는 有(유)라는 표현을 쓴다.  


没有女朋友? (너는 여자 친구가 있니?)


이게 우리가 중학교 때 한자 시간에 배울 때는 ‘있을 유’라고만 배웠는데, 의미상으로는 ‘가진다’는 표현도 있다. 아마 저 위의 표현상으로는 가지고 있다는 것과 좀 더 가까울 것도 같다. (확신은 없다. 중국어 공부를 놓은 지 16년 정도 되었기 때문에.)


왜 우리는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고 그냥 있다고 할까라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나만 느낀 게 아니라 제임스도 느끼더라.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은 좀 더 그 존재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때문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언어는 어쨌든 사고를 나타내는 툴이니까. 우리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좀 더 크게 하는 건 아닐까. 나름의 결론을 내리긴 했다. 이 역시 확신은 없다. 다만, 그저 어떤 대상에 대한 존중의 마음의 발로라면 크게 기쁠 것 같다. 그래서 자랑스레 제임스에게도 말하기도 했다. 누군가에 대한 존중을 담아, ‘있다’ 혹은 ‘없다’로 이야기하라고.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나 중심의 ‘가지다’라고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나는 이게 더 좋더라.


에리히프롬의 아이디어와 상관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소유냐 존재냐'의 그 사이 어디쯤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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