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몬드에는 카지노가 있다
처음 이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이 많았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우려하더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래?’, 나의 대답은 '좋은 이야기는 아니야.' 였다. 불호가 많을 법한 이야기지만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느낌도 많았고, 그냥 개인적으로 좀 재미있던 부분이라 쓰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단 나는 한참 홍콩영화 붐인 시기(80~90년대 초반)를 지난 세대다. 어려서 정말 다양한 홍콩 영화를 보곤 했었다. 물론 '영웅본색'처럼 청불(청소년 관람불가)도 있었지만, 당시 알음알음 어떻게든 보았던 것 같다. 지금 보면 좀 대단치 않긴 한데, 당시는 총과 피가 난무하는 영화라 어린애들 훠이훠이하며 못 보게 했었던 것 같다. '영웅본색'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난 거침없이 ‘도신’을 말할 것이다. 정확한 제목은 ‘도신: 정전자’다. 이 영화는 카드 게임과 관련된 내용이다. 엄청나게 재미있었는데, 초콜릿을 먹으며 카드의 신으로 변하는 주윤발이 멋있었다. 또 이를 재미있게 패러디했던 주성치의 도성도 정말 좋아해서, 지금도 그의 영화를 찾아볼 정도. 이 영화 때문인지 몰라도 홍콩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겜블링’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다.)
하루는 홍콩 친구 M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실 티테이블 위에 작은 함이 하나 보이더라. 무엇인지 물어보니, 웃으면서 열어 보여주더라. ‘마작’이었다. 반짝이는 유리와 도자기로 만들어진 작고 아기자기한 모양새였다. 일반 마작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아이들과 함께 재미로 놀면서 가지고 논다고 하더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니, 가르쳐주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날 나는 가볍게 마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영화 ‘색계’ 등에서나 보았던 그 마작을 실제로 해보다니! 물론, 잘 했느냐? 혹은 재미있었느냐? 아니, 실은 잘 이해를 못 했다. 어려웠다. 뭔 소리인지…… 그냥 가르쳐주는 대로 배워보려 했지만, 영 자질이 없는 것으로. 혹은 문화적 차이로 그 의미를 잘 못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화권 문화를 약간은 더 깊이 접해본 기분은 들었다.
단편적인 예이긴 하지만, 중화권 사람들의 겜블링에 대한 개념이 조금 다른 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은 들더라. 실제 이곳 작은 도시, 리치몬드에는 카지노가 두 군데나 있다. (매트로 밴쿠버에는 꽤 여러 곳에 카지노가 있더라.)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아주 가까이 카지노가 있는데, 이곳을 알게 된 계기는 또 바로 그 옆에 온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리치몬드 나이트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나이트 마켓은 목차에도 기재되어 있듯이 다음 회차에 설명할 것이다.) 한국에선 도심에 카지노가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외국인 대상. 하지만 이곳은 성인 아무나 그냥 들어가도 되더라. 그리고 논란의 요소들도 많긴 했다.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한 아시아인이 카지노에서 돈세탁을 하다가 걸렸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855 밀리언 달러. 처음에 이 금액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니, ‘에이~ 8 밀리언 달러겠지?’라는 반응을 보이더라. 그래서 기사를 찾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 855 밀리언 달러면 한국 돈으로 7천억이 훌쩍 넘는 돈이다. 당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금으로 이렇게 많은 돈이 어디서 났으며 큰돈을 세탁하는 데 사용되는 곳이라고 하니,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좀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더라.
이런 시각은 물론 현지인들도 갖고 있긴 하더라. ‘정당하지 않은 돈이 섞여버리는 공간이 카지노 아니냐’며 말하긴 했다. 궁금증은 직접 풀어야 하는 법. 당연 난 들어가 봤다. 정말 대부분이 아시아인, 거의 중국인들로 보이더라. 칩을 높이 쌓아두고 열심히 겜블에 매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부 사진도 찍고 싶었지만, 떡 지키고 있는 아저씨가 살짝 무섭기도 하고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 같아서 외벽만 찍는 것으로 끝내긴 했다. 뭔가 캐나다인 듯 캐나다 아닌 공간 같은 느낌은 들더라.
하지만 이곳은 리조트이기도 해서 단순 카지노로만 찾는 곳은 아니긴 하다. 얼마 전 같은 학교의 학부모들인 친구들이 이곳 수영장이 좋다며 수영을 하러 가자고 하기도 했고, 주말 뷔페를 먹으러 가자고도 하더라. 꼭 금전적인 특정 의도로만 사용되는 곳이겠는가 싶지만, 이런 제안들도 모두 아시아 계열 친구들이 한 터라. 이건 또 다른 느낌. 일반화해서 말할 순 없지만, 나의 경험상으론 현지인들은 이런 곳보다는 아웃도어 풀이라든가 해안가 등등 좀 더 밖으로 가자고 제안하는 편. 자잘한 차이들이 살면서 점점 더 느껴지긴 한다. 대화 주제라든가. 같이 하게 되는 활동이라든가. 이 '다름'은 또 참으로 재미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쨌든 카지노를 이렇게 다루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저기서 연락 오는 거 아닌지 약간 두렵기도 하다. 사진 찍었다든가, 혹은 관련 이야기를 썼다는 것들이 혹시 문제가 되진 않을지?저 바깥 사진만 찍었어요. 살짝 또 소심해지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