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세균맨
대충 12시까지는 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동생(아들들의 고모/육아 쪼랩 도우미)이 왔다는 소식에 거대한 기저귀 장난감 가방을 멘 오빠가 도착한 것은 그보다 세 시간 전이었다. 조카들이 친히 밟고 뛰어들어 깨워 준 덕에 억지로 눈을 뜬 나는 잠이 부족해 계속 비척거렸고, 엄마가 큰 조카를 교회에 데려간 사이 다시 뻗었다. 둘째 조카에게는 아이패드 미니를 쥐여준 상태였다. 토마스와 친구들을 보고 있어.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잠이 든 것도 아닌 것도 아닌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데 만 2세, 31개월의 삶을 살아온 둘째 조카가 말했다.
“고모! 씻어요!”
잘못 들었겠지. 대답을 안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와 고모로 이어온 목청으로 다시 소리 지르듯 불렀다. “고모오!!” 응? “씻어요!” 지금, 니가 나에게 씻으라고 한 거니? 3세인 네가? 나에게?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씻어왔다고! 어른에게는 일요일 오후까지 씻지 않을 권리가 있어! 물론 그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정도의 수치심은 있는 좀비였다. 스마트폰으로 축구 게임을 하고 있던 오빠가 물었다. “왜 고모 씻으라고 했어? 더러워?” 아니, 더럽다니 무슨 말이... 미처 정정하기 전에 조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안 씻으면 세균이 잡아먹어요!”
그러다 세균맨이 된다구요!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