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Lean Fit
아니, 나는 ‘Lean Fit’ 코스를 선택했다고요. 아이폰 기본 언어 세팅은 영어. 4주짜리 비기너 코스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 코스를 선택하면서 고민을 했다. 무조건 힘인가? 하지만 너무 팔 굽혀 펴기가 많았다. 무릎을 대고 해도 언제나 철퍼덕 엎어지고 마는 상태에서, 욕심을 부리지 말자. 그런데 ‘Lean Fit’이 ‘군살 없애기 플랜’이라는 것은, 한국어로 기본 언어가 등록된 나이키 트레이닝의 메일이 와서 알았다. "군살 없애기 플랜이 여기서 시작됩니다"라니, 너무 좀 노골적으로 속마음을 들킨 기분이잖아.
나이키 트레이닝은 4주 전에 시작했다. 두꺼운 게 무조건 좋은 줄 알고 잘못 산 요가매트를 타인들이 수면매트로 사용한 지 한 달이 지나고서였다. 너무 덥고 밤엔 어두워서 달리기를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뭘 해도 해야 했다. 그렇다면 맨손 홈트지. 일주일에 2-3번, 사용하는 운동기구는 없음, 달리기 포함, 나이키 트레이닝이 뚝딱 만들어준 플랜을 따라 하나 둘 하나 둘. 운동이 싫지 않은지는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무언가 이유를 마련해줘야 된다. 애플 워치를 사고 운동 링을 채우느라 운동량이 늘었다. 그다음은 운동복을 또 샀다. 마라톤을 등록하고, 그다음은 요가 매트. 앱을 깔아서 운동량을 측정하면서 이만큼 운동을 했다는 걸 알게 만들어 주고, 그다음은 에어팟을 산다. 그다음은.. 도대체 뭐가 될까.
집에 종일 있는 날은 애플워치를 차지 않기 때문에 링이 멈춰있는데, 오늘은 트레이닝을 할 때 찼더니 초록색 운동 링만 홀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도 꽉 채우지 못했다. 비가 오는 날 집에만 있는 경우, 의식하지 않는다면 빨리 걷기의 속도로 30분 이상 움직이지도 않는 게 나라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다. 같은 운동 루트가 세 번 반복되는 오늘의 벤치마크 플랜에서 세 번째로 팔 굽혀 펴기 15회를 하면서 생각했다. 싫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좋지도 않다. 정말 꾸준하게도 이 모양이다. 나라도 운동의 상쾌함과 건강해지는 느낌의 즐거움을 설파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박미선처럼 웃으며 말하고 싶을 뿐이다. 즐겁지 않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운동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는 것. ‘운동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하지 않고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상태의 행복.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한다. 군살 없애기 플랜이 시작된 오늘, 심장박동수를 기준으로 1분의 웜엄, 19분의 팻 번, 3분의 카디오 상태에 머물러있었다. 대단해. 정말 효율적인 운동이었다. 그렇게라도 나아가는 거지, 뭐.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