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결론은 판콜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한 달도 더 됐다. 10월의 마지막 러닝을 마치고 골반뼈가 삐그덕 대길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운동 정확히는 재활에 가까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등록을 결심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클라이밍을 하려고 했지만 8주 기초 강습을 듣게 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도 무엇인가 새로운 걸 배우는데 그 정도는 써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 용기를 내어 홍대의 클라이밍 짐에 찾아간 게 아마도 2주 정도 전. 도저히 등록을 할 수 없었다.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할 수는 없어. 등록하러 갔다가 돌아왔다는 말에 친구가 미쳤냐고 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미적거리고 또 시간을 보내기를 며칠. 어깨와 허리, 엉덩이 골반으로 이어지는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무엇보다 고질병 중 하나인 11월의 불면이 찾아오는 바람에 매일매일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 이래서 멜버른으로 갔었지? 하루에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아무래도 저는 안 되겠습니다. 여기서 미세먼지와 추위와 싸우며 살아갈 수가 없어요.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었고, 실제로 매일매일 포기했다. 마감, 그러니까 당장 내일이 아닌 큰 마감 같은 것을. 무엇인가를 미루고 있다는 감각은 나를 더욱 나쁜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러니까 잠을 이기지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잠들지 못하고, 잠들면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 그러니까 별로,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능하다면 숨도 쉬고 싶지 않아요. 그러다 친구의 결혼식에 가는 기차를 놓칠 뻔한 초유의 사태를 겪고, 다시 각성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운동을 해야겠어. 그 말을 여러 번 들은 것 같다면, 맞아. 여러 번 했기 때문이야.
요가를 가기로 했다. 이미 다녀본, 익숙한 요가원이다. 어제 황사와 유독가스 같은 공기를 뚫고 요가원에 갔다. 무려 바로 수업을 들으려고 레깅스를 입은 상태였다. 거기서 신경을 긁은 것은 그 요가원에 단 한 명 있는 남자, 사장이었다. 아뇨, 생각을 좀 해본다니까요. 2개월을 등록하는 게 맞을지 3개월을 등록하는 게 맞을지 고민을 하겠다는데 자꾸 이렇게 하면 되지 않냐 저렇게 하면 되지 않냐 뭐가 문제냐고 닦달을 해대는데 도저히 그런 분위기에서 요가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를 위해 무려 해먹을 걸고 기다리고 계시던 소피아 선생님, 미안합니다. 생각해볼게요. 그쪽 얼굴을 보면 도저히 다시 오고 싶지는 않지만. 마지막 말은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친구가 또 미쳤냐고 말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좀 미쳐있지 않은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침착하게, 망원 헬스. 망원 요가. 망원, 뭐 아무거나. 그렇게 검색해서 걸려 나온 헬스장은 9번 마을버스를 타는 곳에 있다. 이름이 정말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5분 거리도 안된다는데 의의를 두자. 요새는 카카오 플러스 친구가 있어서 상담을 쉽게 할 수 있단 말이야. 수요일 오후 5시로 상담을 걸어놓고, 역시 큰 마감이 아닌 다른 마감을 하다가 잠들었다. 곧 짓눌리게 될 거야. 악몽을 꿀 수도 있지. 일어나니, 팟캐스트 녹음을 하러 가기까지 빠듯한 시간만 남아있었다. 오늘도 택시인가. 이번 달 택시 요금을 생각하니 다시 죽고 싶었지만, 참아내고 팟캐스트 녹음을 했다. 2주나 3주 나올 줄 알았던 방송이 길어지고 있었다. 출연료를 생각하면, 좋은 일이었다. 녹음이 길어져서 다시 상담을 미뤘다. 돌아오는 길에는 망원시장에 새로 생긴 마포 만두에서 떡순이 세트를 먹었고, 맛이 없었고, 떡볶이가 맛이 없는데 살아도 괜찮은지 생각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떡볶이가 맛이 없으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상담을 갔더니 친절하고 묘하게 교포 발음인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과 강사 몇은 남자였지만 회원은 여성 전용에 지문을 찍고 들어가는 시스템이라 꽤 안심이 됐다. GX 프로그램은 미심쩍었지만 가격은 합정 요가원의 절반도 안됐다. 게다가 2시 반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의 기상 시간과 낮에 기능하지 않는 뇌를 생각하면 몸을 깨워주기에 딱인 시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등록하겠습니다. 현금을 떡하니 내밀었다. 현금 할인은 없습니다. 그것 참 아쉽군요. 여하튼, 그렇게 3개월. 그렇다면 오늘도 수업 들어보실래요? 보니까 8시 반 줌바가 있었다. 줌바!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그 운동이다. 그렇다면 오늘부터로 하죠! 수업까지는 30분이 남아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실내용 운동화를 챙기고 다시 지문을 찍고 짐에 입장했다. 그리고 탈의실에 갔을 때, 인간 줌바가 있었다. 그러니까 ZUMBA라고 적혀있는 뉴에라를 쓰고, 조로가 아닌데 중간에 크게 Z라고 적힌 민소매 티를 입고, 허리에는 바람막이를 두르고, 역시 ZUMBA라고 라인을 따라 적힌 화려한 색의 레깅스를 입고, Z를 형상화한 무늬가 있는 농구화 스타일의 운동화를 신은 사람. 당연히 줌바 강사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걸 믿을 수가 없었다. 왜 저렇게까지 줌바...?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GX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평범한 운동복을 입은 여성들이 있었다. 정말 안심이 됐다. 안심한 상태로 애플 워치 운동 앱을 뒤지니 줌바가 따로 분류가 되어있지 않았다. 고심을 하다가 댄스로 설정해놓고, 평범한 운동복을 입은 나는 당연한 줌바 강사와 워밍업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긴팔을 입은 사람이 많으시네요! 다 벗게 될 거야. 내가 여러분의 햇님 선생님이 될 거예요!"
왜 또 갑자기 이솝우화...? 그리고 워밍업이 끝났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맨투맨을 입어 벗을 수 없지만, 당연히 줌바 강사의 예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마지막에 맨투맨을 스포츠브라 아래까지 올리고 스튜디오를 나서게 된다. 여하튼 스쿼트 동작이 가미된 춤인 웜업까지만 해도, 줌바는 그냥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운동이었다. 그다음이 살사라는 걸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그리고 레게가 나올 거였다면? 다시 차차차가 나오고, 뭔가 모르겠지만 스페인 음악이 나오고, 무려 메렝게까지 나오고 인간 줌바가 그 하나하나를 '작품'이라고 표현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와중에 춤을 추는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는데, 몸이 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의 작은 마음을 안다는 듯이 당연히 줌바 강사는 말했다.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아시죠?" 이 따위로 스텝을 엉망으로 밟고 있어도요? 팔과 다리가 심하게 따로 노는데도요?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은 없다. 왜냐하면 각기 다른 춤 장르 9개를 9개의 곡으로 편집한 10분짜리 리믹스 작품(정확히 리믹스 작품이라고 했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허둥지둥 추고난 뒤에도 끝은 아니었다. 차차차 스텝의 새 작품 하나를 더 배웠고, 그제야 쿨다운이었다. 쿨다운은 근력이에요. 네? 춤으로 근력이요? 그런데 흘러나오는 노래가 샘 스미스의 'I am Not The Only One'이라면 어떨까? 바람을 피운 애인 뒤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는 샘 스미스의 목소리에 맞추어 엉덩이를 씰룩대는 부조리함이야말로, 진짜 끝이었다. You say~ I'm crazy~ 안다고, 나도 나 미친 거. 줌바가 그 와중에 너무 좋다는 것도 약간 좀 미친 거 같아. 애플 워치를 보니 55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내가 소모한 열량은 390 칼로리. 운동량의 절반이 피크를 찍고 있었다. 이렇게 심장박동수가 올라가는 운동의 특징은 이후에도 몇 시간 동안 몸이 알아서 칼로리를 태운다는 것인데요. 잘난 척은 속으로만 하고 당연히 줌바 강사에게 다가가 칼로리 소모량을 알리자 실망스러워했다. 원래대로라면 800은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은 회원님이 처음이라 보면서 따라 하는 데 급급하셔서 그래요. 운동 좀 하셨죠? 오늘 보니까 운동을 좀 한 사람의 동작이더라고. 빠지지 마요~
어쩐지 얼떨떨한 채로 집으로 돌아오니 목구멍 깊은 곳과 귀가 아팠다. 감기 신호였다. 땀에 젖은 채로 돌아오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네. 바르셀로나에 신혼여행 간 친구에게 냉장고에 있는 판콜을 하나 먹어도 되냐고 물었고, 판콜을 하나 먹고 마감을 했다. 그리고 이 일기의 양은 그 두배는 될 것 같은데 시간은 1/10도 걸리지 않았다. 당연하지, 인생을 일기 쓰듯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어. 모든 글을 일기 쓰듯 쓸 수도 없어. 그런데도 또 후다닥 열심히 쓰면 이렇게 안되려나, 하는 헛된 마음을 품어보는 것이다. 그 마음과, 줌바로 인한 칼로리 소모와, 판콜의 기운을 안고 이제 잠든다. 내일은 미리 사둔 내일의 앙버터가 있으니까, 앙버터만큼은 살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패드 프로와 펜슬을 산 게 아까워서 시작한
나 자신과의 1년짜리 약속.
ps. 나에게는 셀프 약속을 잘 어기는 재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