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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Mar 28. 2023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흔들리는 마음, 흩날리는 나날들


함께 하지 못할 시간들이 지금부터 아쉽고 그립지만,
가끔씩 오래 뵈면서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공동 창업자 중 가장 어렸던 동료가 회사를 떠나며 편지를 남겼다.


우리 모두는 성인이고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아직 휴학생이었던 그를 어려운 길에 합류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부채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함께 시작한 동료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야 했다.





1.

해커톤에 버금갔던 워크숍 이후 조직은 변화를 맞이했다.


일단 '원팀(one team)'으로 일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인원이 적어 모든 업무에 일손이 모자랐지만, CS와 공간 대관 관련 업무에 많은 리소스가 필요했다. 그동안 '스페이스체크업' 팀에서 담당했던 업무였는데, 앞으로 공간 운영과 직결되는 업무는 팀/직무 구분 없이 '공통업무'로 간주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의사결정은 사일로 현상*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아울러 멤버 모두가 공간과 관련된 의견과 정보를 습득하고, 나누며 온전한 '공간운영팀'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습득한 고객(공간 입주사/이용자)의 의견과 정보는 더 나은 프로그램과 마케팅을 만들기 위해서도 꼭 필요했다.

*사일로 현상(Silo Effect): 부서 이기주의를 의미하는 용어로, 조직의 공동 목표와 이익보다는 자기 부서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다른 부서와의 정보 공유 및 소통·협력을 외면하는 현상


우리는 그래 봤자 팀별로 2명씩 밖에 안 되는 규모였다. 당장은 각자 하고 싶은 일(직무)을 조금 덜하더라도, 하나의 팀으로서 함께 일을 나누고, 만들어 가는 방법이 시급했다.


함께 정한 조직의 방향대로, 나 역시 담당해 왔던 마케팅 업무에서는 힘을 좀 빼고 대신 CS와 대관 관리, 커뮤니티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에 시간을 쏟았다. 공간 운영에 필요한 매뉴얼을 함께 정비하고, 효율적인 CS를 위해 채널톡을 도입하면서 업무 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조금은 삐걱대지만, 그래도 조직의 변화가 느껴져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2.

채널톡 베타 버전을 홈페이지에 적용할 무렵, 공간은 개관 2주년을 맞이했다. 우리가 창업한 지 약 1년 6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동안 공동 창업자 중 가장 어렸던 동료가 회사를 떠났고, 새로운 동료를 채용하면서 내부 인력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개관 2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동안 입주사에게 받은 몇 가지 건의사항이 있었는데 크게 세 가지였다.


다른 입주사와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타트업 투자 관련해 자문을 얻고 싶어요.
회사의 제품/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해요.


이러한 의견을 적극 반영해 일주일간 네트워킹 파티&이벤트, VC밋업, 플리마켓까지 무려 세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꽤나 무리일 거라 생각했지만, 연간 계획 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기에 도전은 불가피했다. 짧은 일정 안에 여러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하는 데다가 평소에 하던 업무까지 겹쳐져 모두가 바쁜 나날을 보냈고, 그만큼 지쳐갔다.


사실 업무가 많은 것은 괜찮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해 낼 수 있다. 서로를 지치게 한 것은 물리적인 업무의 양이 아니라 아니라 업무가 몰리기 시작하자 '원팀'으로 일하고자 했던 모습이 희미해지는 것이었다.


각 프로그램마다 PM(Project Manager)를 지정했지만, 서로가 서로의 조력자가 되어 최대한 함께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각자가 맡은 프로젝트 준비에 매몰되기 시작했고 다른 이의 의견에 응답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남기는 것이 힘에 부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에 하던 업무도 기존 담당자가 빠르게 쳐내기 일쑤였고, 공통 업무 영역은 회색지대로 변모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플리마켓의 PM을 맡아 셀러를 모집하고, 마켓 현장 운영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러면서 개관 2주년 행사 전체에 대한 홍보 콘텐츠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다. 짧은 기간 워낙 여러 콘텐츠를 기획하고 준비하다 보니 공통 업무로 약속했던 CS와 대관 관리에 소홀해졌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날이 늘어만 갔다.


여차저차 많은 밤을 야근으로 지새운 덕분에 개관 2주년 행사는 좋은 성과를 내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는 행사가 종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명의 공동 창업자를 더 떠나보내야 했다. 






함께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 떠나간 동료들에 대한 아쉬움이 겹쳐 마음이 어수선했다. 공동 창업자이자 팀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도 뒤로 미루고, 연봉마저 낮췄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창업했던 동료들의 퇴사를 보며 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술이 들어가자 자연스레 그동안의 근황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친구는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창업가로서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어?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커리어, 연봉,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얼마나 포기할 수 있냐는 것은 반대로 모든 것을 걸 수 있는지를 의미하기도 했다. 근본적으로는 결국 창업가로서 나를 나아가게 만드는 동기부여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필요했다. 


긴 정적 속에서 마음이 흔들렸고, 함께한 나날은 흩날렸다.





<창업가로서 실패했다>

창업 후 2년, 실패를 기록하는 회고 에세이

https://brunch.co.kr/magazine/memoir-start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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