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년 워크숍을 떠나다
대표님: 우리 1박 2일로 워크숍을 가서 해커톤처럼 밤새 치열하게 논의하면 좋겠어요.
나는 해커톤까지 생각하진 않았지만, 여러모로 '대화'가 필요한 시기였다. 워크숍이라는 멍석이라도 깔리지 않으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법인 설립 1주년을 맞이한 시점, 우리는 새로운 전환을 위해 조직문화 워크숍을 떠났다.
1.
창업을 함께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공동창업자가 아닌 첫 멤버를 채용했고, 기존 공간 운영 사업 이외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으며, 회사는 여러 기회와 노력이 더해져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조금씩 매출이 오르며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겪은 변화에는 긍정적인 면모만 있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부적으로 부정적인 분위기가 가득했다. 당시 조직 구성은 3개의 파트(공간관리, 프로그램, 브랜딩)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파트별로 2명씩에 불과했고, 우리 모두는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분주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경계가 모호하거나 사소한 업무는 아무도 챙기지 않는 일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업무의 공백이 생기고, 실망스러운 결과물도 늘어났다.
또한, 우리는 피자 두 판의 법칙*에 속하는 6명이라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 역시 업무의 경계를 짓고, 주위를 살피지 않고 있었다.
*피자 두 판의 법칙: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제시한 팀 운용 법칙으로 팀원 수가 피자 두 판 이상을 먹을 인원인 8명을 넘지 않아야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하면서 의사결정을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서로를 믿고, 함께 좋은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마음은 같았지만 개개인의 경험에 따른 업무 방식과 목표가 달랐고, 협업과 소통의 생각 차이가 점점 분명해졌다. 실타래가 더욱 꼬이기 전에 조금이라도 풀어야 할 필요를 느꼈고, 더욱 솔직히 대화할 자리를 마련해야만 했다.
2.
하루 만에 모든 것을 끝내지 않기로 했다. 일단, 핵심가치의 중요성을 공감하며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함께 일하기 위한 그라운드 룰을 정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1주년을 맞은 우리의 조직문화 워크숍은 1박 2일 일정으로, 춘천에서 진행됐다.
워크숍의 시작은 '웰컴 춘천'을 위해 닭갈비로 시작했다. 든든히 배를 채운 후에는 1986년에 오픈한 국내 최초의 로스터리 커피 전문점 '이디오피아집'을 방문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관광지처럼 너무 유명한 곳보다는 숙소와 가까우면서도 지역의 이야기가 담겼거나, 대화하기 좋은 공간을 다니며 그동안 소원했던 우리 관계의 환기를 기대했다.
첫째 날
- 조직의 향후 3년 계획과 업무에 대한 피드백
- 일하고 싶은 환경과 만들고 싶은 환경에 대한 이야기
둘째 날
- 핵심가치는 무엇이고, 왜 세워야 하는가?
- 핵심가치 다시 세우기
숙소로 돌아온 후, 본격적인 워크숍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먼저 대표님의 발표를 통해 지난 기간 동안의 성과를 나누고, 앞으로의 예상 이윤과 3년 목표에 대한 예상 도달 치를 공유했다. 또한, 가장 불거진 문제 중 하나인 '협업과 팀워크'의 부재를 되짚으며 공통 업무의 필요성과 앞으로의 역할 및 조직에 대한 개선안을 제시했다.
앞서 강조한 협업과 팀워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함께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핵심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서로가 느끼고 있는 만족도와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일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업무에 대한 성과 평가를 하는 자리가 아닌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평소에 하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조직을 점검하기 위한 5개의 질문>
1. 현재 소속감과 성장 가능성을 느끼는지?
2. 회사와 직무에 대해 만족하는지?
3. 새로운 시도나 문제 제기에 대해 긍정적 혹은 생산적인지?
4. 자신의 업무 목표와 역할을 이해하고, 과정을 공유하고 있는지?
5. 커리어 성장에 대한 업무적 기회와 조언을 얻고 있는지?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분명 함께 회사를 만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만족감을 느꼈고, 처음 겪어 보는 창업이라는 경험을 통해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반면에 조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C레벨로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도했는지, 조직에서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과정을 공유해 왔는지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브랜드를 개발하고, 여러 보이는 부분들을 세팅한 후 느꼈던 불안감의 근원은 여기에 있었다. 어쩌면 그동안 이러한 이유를 다 느끼고 있었음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해커톤을 방불케 했던 워크숍의 첫째 날이 지나고, 향긋한 커피 향기와 함께 아침이 밝았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잔잔한 호수(의암호)를 앞에 두고 있는 위치였다. 아침 햇볕에 물든 풍경이 퍽 아름다워서 단체사진을 찍자고 했다. 우리 회사에서 사진 촬영 담당은 나였기에 호수를 배경으로 위치를 선정하고, 삼각대를 세웠다. 비록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가득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밝게 웃으며 사진을 촬영했다.
밝게 웃는 사진 뒤로, 잔잔한 호수가 아닌 파도와 같은 성장통을 앞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