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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태웅 May 11. 2023

결실과 결심

이제는 풀쩍 뛰어오를 때



20대 초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익숙함과 결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 사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인데, 개인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서 용기가 나지 않을 때 다시 돌아보는 구절이 있다.


새로운 시작은, 익숙한 인생의 길에서 풀쩍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발 딛고 서 있는 그곳과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수많은 결실과 단 하나의 결심 속에서 풀쩍 뛰어오를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1.

공간 개관 2주년 행사로 시작했던 2022년의 하반기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한 해의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사회혁신 창업 포럼을 진행한다. 창업하기 전까지 포함하면 벌써 세 번 연속 진행을 맡을 정도로 우리 회사가 잘할 수 있고, 외부적으로도 인정받는 포트폴리오 중 하나다. 그만큼 힘든 프로젝트지만, 행사가 끝나고 나면 속 시-원한 마음으로 연말을 맞이하는 게 회사의 전통이 되었다.


한 해를 돌아보면 많은 결실이 있었다. 공간 개관 2주년 행사와 사회혁신 창업 포럼을 잘 마무리했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운영 중인 카페 브랜드의 매출도 전년 대비 향상됐고, 내부적으로는 아직 부족하지만 조직문화 측면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고, 빠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홍보 대행'이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성취를 느꼈다.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새로운 매출을 창출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마케팅' 영역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프로젝트를 리드했다. 대행 견적서와 계약서 양식을 마련하고, 키비주얼 기획부터 결과 보고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상반기와 하반기 각 1회씩 진행했고, 내년도(2023년)에 서울시와 추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모두가 노력한 덕분에 좋은 결실을 맺었고, 회사는 여러모로 성장세에 들어섰다. 갈 길은 멀지만, 막연하게 생각했던 우리의 공간을 만든다는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2.
그러나 이러한 성장세도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것을 희생하며 창업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는 마케팅을 하는 실무자였다. '희생했다'는 말조차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핑계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심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더 이상 함께 만든 회사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성장할 수 없다고 느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마케팅의 역할이 줄어든 것 
둘째,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없다는 것


당장 조직 내에서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만 갔다. (물론, 회사생활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만) 조직 내·외부적으로 마케팅이 아닌 다른 일의 중요성이 커져 갔고, 홍보 대행 이후 새롭게 제안했던 마케팅 계획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실행할 수 없었다. 클라이언트의 방향성 변경이나 내부 우선순위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부족한 리더십과 설득력도 큰 이유 중 하나일 터.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셋째, 끝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창업가(운영자)가 아니었다는 것


마주한 변화 속에서 성장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창업가가 아니라 마케터로서 이러한 변화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내가 커리어를 신경 쓰지 않고, 창업에 모든 것을 걸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다. 스스로 모든 것을 걸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혹시 모를 '다음'을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고집했다.


도망칠 구석을 찾는 와중에 나아갈 길을 찾을 리 만무했다. 현재 상황에서 두 가지 길은 양립할 수 없었고, 더 이상 나와 조직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기 전에 선택해야만 했다.


앞으로 3년, 5년 더 창업가로서 조직의 성장에 몰두할 것인지
아니면 마케터로서 관심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을 것인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기나긴 고민 끝에 결심을 했다.





C레벨의 경영진이 모여 여러 차례 미팅을 가졌다.
동료들은 나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고 의견을 줬다.


우리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서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물었다. 생각의 간극을 좁히고자 했지만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수도 없이 망설였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퇴사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풀쩍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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