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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여행자 May 17. 2019

6화_ 이탈리아 청소년들과 나눈 공감

여기는 한류 열풍이 없나 봐. 얘네들이랑 어떻게 친해지지?

돈자니 신부에게 메일을 보낸 결정적 이유는 현지 청소년들과 교류하기 위함이었어요.

지난 동남아 여행에서는 하나의 습관처럼 교육 봉사활동을 했으니까요. 적게는 초등 1학년 학급부터 많게는 대학생까지.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각지를 떠돌며 꾸준하게나마 미약한 재능을 기부했습니다.

말이 기부 혹은 봉사활동이지,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훨씬 많았습니다.


불치하문(問).

혹시 이 사자성어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고등학교 2학년 한자 시험에서 예체능 친구들을 제치고 전교 꼴등을 차지한 제가, 유일하게 마음속에 세긴 사자성어입니다.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다.


저도 어리지만, 저보다 더 어린 학생과 함께 지내다 보면 늘 새로운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오히려 인생 선배로부터 무언가 배울 때는 '아, 나보다 오래 살았고, 배우고 경험한 것이 훨씬 많으시잖아.' 하면서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저보다 어린 사람이 무언가 해내면, '아니, 나이도 어린 게 어떻게 저걸?' 하면서 질투심 비슷한 게 생기나 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동생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아주 내성적이라는 거죠. 그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부끄럽고, 말을 거는 행위는 더더욱 망설입니다. 그야말로 숙맥이죠. 어색함이라는 벽을 허물면 알콩달콩 지낼 수 있는데, 그 벽을 허무는 게 정말 힘듭니다. 대신 누가 말을 먼저 걸어주면 상황이 달라요. 살짝 수줍었다가 금방 마음을 엽니다. 참 이기적이죠? 먼저 다가가지 않고, 누군가 먼저 말 걸어주기를 기다리고 앉았으니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큰 문제없었어요. 한류 열풍 덕에, 한국 사람은 인기가 많았거든요. 가만히 있어도 동남아시아 아이들은 제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청소년들은 너무 달랐어요. 이들은 를 처음 봤을 때, 멀뚱멀뚱 쳐다만 봤습니다. 먼저 인사를 건네지도 않고, 생소한 듯 웃지도 않았죠.


애간장이 탔습니다. 제 유일한 임무는 이들과 소통하는 거잖아요. 돈자니 신부와 마을 이웃들이 베푼 은혜 꼭 보답해야만 했습니다.


청소년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들의 이름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두는 것이었어요. 제 군생활 막내 시절, 선임들의 이름과 기수를 적어 외운 적 이후로, 누군가의 신상을 이렇게 필사적으로 외우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누가 누구의 남자 친구 여자 친구인지 세부사항도 적었죠. 이름을 불려줘야 하루빨리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나와 같은 여행자로 이곳에 방문한 코너. 그는 하와이 섬이 고향이랍니다!


제 노력과 달리 저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대신 하와이에서 온 친구, 코너만 인기 있었어요. 충분히 그럴 만도 한 게, 그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유치해지고 스스로 망가졌어요. 틈만 나면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면서 영어에 서툰 아이들과 소통하려 했죠. 체면을 살리는 저와 정말 비교되지 않나요? 실로 완벽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런 코너는 저의 단짝 친구였지만, 살짝 질투되더라고요. 저보다 아이들과 더 친하게 지내는 모습에 없던 경쟁의식도 생겼습니다. 저도 과연 코너처럼 될 수 있을까요? 먼저 다가가는 것조차 망설이는 제가, 어떻게 청소년들과 친해지겠습니까.


'이거 큰일인데, 가만히 앉아 멀뚱멀뚱 시간만 보낼 순 없어. 청소년들과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하는 것. 그게 내 유일한 임무 아니야? 그것도 하나 못하는 바보가 있어?'


마음 굳게 먹었습니다. 이 악물고 청소년들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이름을 다시 물어보고, 취미가 뭔지, 좋아하는 게 뭔지, 꿈이 뭔지 거듭 물어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노력과 달리 이들은 대답만 할 뿐, 말을 걸지 않았어요.  다시금 정적이 흘렀고, 저는 어색함에 어찔할 바를 몰랐습니다. 코너는 하하호호 이야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한없이 쭈그려졌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소식 없던 봄이 다가오는 것처럼 서서히, 우리 사이의 두꺼운 얼음벽은 방울방울 녹아내렸어요.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청소년이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아마, 그 계기는 탁구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청소년들 겨울 방학을 맞은 초등생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양한 게임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어요.


이때가 크리스마스 연휴였기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죠. 그런데, 방학을 맞은 자식들이 마냥 부모에게 반가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는 방학 맞은 아이는.. 음.. 때론 성가시죠. 하루 종일 집안에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직장에 몰입할 수도 없고...


이때 해결책은 성당인가 봅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방학을 맞은 자신의 자식을 성당에 떠맡기려(?) 옵니다. 이제 청소년들이 이들을 돌볼 차례입니다. 다양한 레크리에이션과 간식을 준비해서 어떻게든 시간을 때워야 했죠.


놀이 공간에는 탁구대도 하나 있었습니다.

간식 시간 청소년들에게 자유시간 의미했는데요.

저는 이들과 함께 탁구를 했고, 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벌였어요.

같은 팀이 되어 서로를 응원했고, 다시 상대 팀이 되어 접전을 벌였죠.

탁구공을 주고받으면서 애정을 주고받았나 봅니다. 스포츠의 힘은 위대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이들과 친해지지 않았는데, 탁구 하나로 어색함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방학을 맞은 초등생들과 놀아주는 청소년들의 모습. 림보를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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