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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여행자 May 19. 2019

마지막화_ 한국과 이탈리아 청소년의 다른 점

최후의 만찬에서 나눈 대화. 두 나라 청소년의 상반된 삶.

이제는 메모장에 적어둔 청소년들의 이름을 보지 않아도 됐습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워 불러주었죠. 마치 동네 형 혹은 오빠가 된 것처럼 아이들과 친해졌습니다.


가방 깊숙한 곳에 있던 한지와 붓 펜을 모처럼 꺼내 듭니다.

스위스 가족에게 선물했던 것처럼, 이들에게 한글 이름을 캘리그래피로 써주고 싶었어요. 지금껏 이렇게 많은 이름 선물을 한꺼번에 준비한 적은 없었네요.


청소년들은 제가 선물을 주겠다고 하자 순식간에 제 주위를 둘러싸 앉았습니다.

저는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았어요. 정확한 발음을 재차 확인하고 싶어서도 있지만, 한 번 더 이름을 가슴속에 아로새기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 연습 끝에 그럴싸한 캘리그래피 디자인이 나오면, 한국에서 가져온 한지에 정성껏 이름을 옮겨 썼습니다. 어쩌면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들은 이 한글 이름이 예쁜지, 세련된지, 이상한지, 무성의한지.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거예요. 이들에게 한글은 제게 러시아어 필기체를 보는 꼴 아닐까요?


그래서 심혈을 기울이는 척(?) 해야 합니다. 이름을 듣고 바로 한지에 옮겨 쓰는 게 아니라, 연습장에 몇 벅 습작을 그려야 '아! 내 이름 하나 써주는 데도 저렇게 큰 노력이 들어가는구나.'하고 느낄 테니까요.


그들의 이름을 써주는 이 순간만큼은, 제가 코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답니다.. (눈물)

이곳에서 저는 늘 받기만 했습니다. 돈자니 신부로부터, 청소년으로부터, 마을 주민으로부터. 단지 멀리서 온 여행자라는 이유로 대접받았어요. 아무래도 이건 불공정 거래입니다.


떠나기 직전, 한국 저녁상을 준비했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청소년들과 단짝 친구 코너 그리고 돈자니 신부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겼습니다.

식탁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대게는 한국 음식에 대한 첫 경험담 또는 한국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신부님. 똑같은 청소년인데, 한국이랑 이탈리아. 두 삶이 확연히 다른 것 같아요."

"뭐가 다른데?"

"한국 학생은 이맘때 모두 학원에 가요. 이렇게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또래 친구들도 밤늦게까지 학원에 있죠. 오히려 학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니까요. 저 같은 경우도 야자 때문에 밤 열 시가 훌쩍 넘어서 집에 도착하곤 했어요. 동네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다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맘마미아(Mamma Mia: 세상에나)! 아니, 어떻게 학교에서 저녁을 먹고 온단 말이야?"


돈자니 신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나요. 그런데 가만 보면 그의 반응이 참 재밌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렇게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어?"라는 반응을 예상했는데, 돈자니 신부는 저녁을 학교에서 먹고 온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금쪽같은 저녁 식사를 말이죠.


이곳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모여 그날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저녁 먹을 때입니다. 서로의 품에 안겨 사랑하고, 동시에 사랑받고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시간이죠. 그런데 학교에서 저녁을 먹는다고요? 아무래도 이탈리아 상식에서는 비윤리적인 일일지도 모릅니다.


"한국 학생은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해?"


결국에 대화의 끝은 항상 이 질문입니다.

본질적인 거죠.

왜 한국 학생들은 공부밖에 안 하냐.


"음. 글쎄, 우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나중에 좋은 직장을 얻고.. 또 좋은 집을.."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끝내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요. 치열한 경쟁 끝에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는데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현실은 평범하게 살기조차 힘들죠. 평범한 게 더는 평범한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이게 무슨 말장난)


결국, 종착지는 행복한 삶입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 좁고 험난하네요.


제가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그 여정 자체에 행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죽어라 공부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마음껏 하며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죠. 어찌 보면 한국 학생보다 덜 필사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게으름뱅이처럼.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탈리아 청소년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겁게 살지 배웁니다. 한국 청소년은 어떻게 하면 인생에서 경쟁우위에 설지 배우는 거고요. 무엇이 올바른 길일까요? 지적 능력도 좋지만 행복을 느끼는 정서적 능력도 함께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어렵지만 행복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생각하려 합니다.

최후의 만찬! 김치볶음밥과 불고기를 요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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