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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여행자 May 16. 2019

5화_ 한국 습관을 버리라는 외국 친구

나는 아직도 남 눈치를 본다.

이게 웬 횡재일까요!

혹시, 우피치 미술관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굴지의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이 미술관은 한 달에 한 번 무료 개방을 합니다.

그게 딱, 이 날이었어요!


기쁜 것도 잠시, 족히 400미터 이상 길게 늘어선 입장 대기 줄을 보니 기가 막히더라고요. 꼴딱 세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뒤에는 여학생 한 명이 서 있었어요. 셀카봉, 하얀색 미러리스 카메라, 머리 모양과 화장법을 보면, 누가 봐도 한국인이었죠. 내가 혼자 왔다면 말이라도 걸었을 테지만 - 네. 이것도 구라입니다 - 막상 옆에 친구가 둘이나 있다 보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난기 많은 론이 가만히 있질 않네요


"윤. 너 뒤에 한국인 아니야? 맞지? 맞지? 근데 왜 말을 안 걸어. 여자 혼자 왔고, 너도 혼자 여행하잖아! 뭘 뻘쭘하게 서있어?!"

아무튼, 깐죽대는 건 금메달 감입니다.

"외국에서 한국인끼리 만났다고 무조건 인사하지 않아.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인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신기하거나 반가울 것도 없다니까?"

"윤. 또. 또. 또. 시작이네! 제발 한국에서 가져온 빌어먹을 습관 좀 버려!"


당장이라도 장난을 걸듯한 론의 표정(사진에서 오른쪽)

론이 내게 늘 하던 말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빌어먹을 습관 좀 버리라나요.

그가 보기에 저는 아직도 수줍음을 많이 타고 남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아이였나 봅니다.

그동안 여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 내성적인 태도를 극복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요.


" I am not a typical Korean. 저는 전형적인 한국인이 아닙니다."

저는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종종 이런 말을 곁들이곤 했어요.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이렇게 배낭을 메고, 혼자 다니고, 현지 호스트를 만나러 다니는 한국인, 또 있는지 한번 떠올려보세요.

이렇게 유별나게 여행을 다닌 이유는 한국 특유의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를 싫어해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그저 나이 불문, 모두 친구로 지내고 싶습니다.

동생, 후임, 후배. 때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달랐지만, 아랫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어요. 군 생활에서도 되도록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고요.  나 귀찮다고, 내가 더 높은 사람이라고, 형이라고 텃세 부리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좋은 동생을 많이 만날 수 있었죠.


반대로 형, 선임, 선배에게는 깍듯하게 대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후배에게 하는 것처럼 가깝게 지내고자 했고, 까불거린 거죠. 한마디로 저는 싸가지없는 동생이었을지도 몰라요.


솔직히 보이지 않는 숫자 경계선 때문에 더 친해질 것도 못 친해지는 것 같아요. 서로 뒷말만 하고 정작 앞에서는 가면을 쓰고. 친구였다면 터놓고 얘기했을 텐데, 한바탕 말싸움이라도 하고 나면 더 가까워졌을 텐데. 서로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낼 때가 종종 있네요.


이런 특이한 성격 덕에 외국인 친구를 순식간에 사귀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할아버지도 친구가 되거든요. 실제로 관광지에 있는 외국인 여행자 무리를 보면, 나이 차가 크게 나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한국인은 대부분 비슷한 또래끼리 뭉쳐 다녀요. 같은 호스텔에서 만난 반짝 결성한 무리만 빼고요.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 제가 보수적인 한국 문화를 극복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론이 보기에 한참 멀었나 봅니다. 여전히 저는 하고 싶은 걸 하기 전에 망설이고, 남 눈치를 보고, 고민하나 봐요. 스스로가 아닌 남을 의식하는 거죠.


결국, 답답했던 론이 뒤에 있던 한국인 여학생에게 직접 말을 걸었습니다.

"어!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신가 봐요!"

저 역시 자연스럽게 그 대화에 꼈어요.


왜 진작 말을 못 걸었을까요.

저도 혼자 여행을 다니는 주제에, 외롭게 혼밥 하고 있을 때나 혼자 길을 걸을 때, 다른 여행객이 말이라도 걸어주면 그렇게 좋아했으면서.

론의 말이 맞았네요.

아직도 저는 자존심을 세우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던 거죠.


이렇게 다른 문화권에서 외국인 친구와 대화하다 보면, 자아 성찰이라고 해야 할까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신기합니다.

커플로 여행가도 평소에 못 보던 연인의 모습이 보이고(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지만),

혼자 여행가도 스스로 알지 못하던 성격이 나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가만히 있는다고 그런 성찰이 잘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대화해야 합니다.

이건 한국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네요.


평소에 만나던 친구들 떠올려보세요.

다 자기랑 비슷한 관심사, 비슷한 성격이에요.


때로는 다른 성격, 특히 생판 다른 문화권을 만나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 배경이 여행이새하얀 백지에 놓인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여행에서 하는 고민 대부분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거잖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뭐 이런저런 고민이 많습니다. 백지에 이것저것 그린 게 혹은 누가 그려놓은 게 많네요. 자신은 그냥 뒷배경인 것 같기도 하고요.


비너스의 탄생. 실물 영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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