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_ 당나귀 농장을 운영하는 노부부를 만나다

여기는 영국 남단 바닷가 마을, 클로벨리

by 사람 여행자

유럽 마지막 행선지는 영국 남단입니다.

제 인생 영화 <어바웃타임>의 배경이 된 곳이죠.


사실, 영화는 콘월(Cornwall) 주에서 찍었지만, 저는 바로 위에 있는 데번(Devon) 주에 호스트를 구했습니다. 여러 차례 콘월에 있는 호스트에게 연락을 보내봤지만, 유일하게 와도 좋다고 대답한 곳은 데번주에 있는 당나귀 농장뿐이었거든요.


콘월이 전라남도면 데번은 전라북도쯤 해당되니까. 이만하면 괜찮게 구한 거겠죠?


런던에서 이곳까지는 남동쪽으로 차를 다섯 시간 정도 몰고 가야 됩니다. 물가 비싼 영국에서 호스트 마을까지 찾아가는 교통비가 만만치 않네요. 돈과 시간을 모두 소비해야 하는 '고통비'가 아프게 비쌉니다.


당나귀 농장을 운영하는 호스트 노부부

굵은 빗발이 날리는 어두운 겨울밤, 런던에서 출발한 고속버스는 비드포드(Bideford)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호스트를 만날 계획이었죠.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20분이나 지났지만, 호스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괜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당신이 제 호스트인가요?'라는 무의미한 눈짓만 던질 뿐이었죠.


호스트를 만나러 가는 초행길은 아무래도 늘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윽고 지붕 높은 하얀 승합차가 맞은편에 멈춰 섰고, 호스트 바트(Bart)가 내렸습니다. 우리는 빗속에서 첫 악수를 한 뒤 재빨리 차에 올라탔어요.


차 안은 투둑 투둑, 장대비가 철판 지붕 두들기는 소리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와이퍼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좌석 시트에는 메마른 지푸라기가 듬성듬성 붙어있었죠.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냄새도 났습니다. 동물을 기르는 집이라면 날 수밖에 없는 특유의 털 냄새였죠.


미안한 말이지만, 바트는 플라스틱인지 자연 그대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거친 회색 머리털만 두상 양쪽에 조금 남겨두고 있었어요. 중간부터 머리가 하나둘 빠지기 시작해 지금의 아인슈타인 같은 머리 모양을 가졌나 봅니다. 그 아래 숱이 많고 진한 눈썹, 강렬한 눈, 짙은 회색 콧수염이 차례차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코 밑을 제외하고는 모두 면도하는 것 같긴 한데 완벽하진 않습니다. 농장일 하는 어르신에게 매일 아침 면도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목소리는 남자답게 생긴 얼굴과 달리 높은음이었어요. 바닷가에 살아서 그런지 목 깊숙한 곳에서 성난 파도처럼 높고 거친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특유의 방언이 있었어요. 덕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세찬 빗소리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아직은 적응하기 힘든 영국 방언입니다.


우리는 먼저 당나귀 농장으로 갔어요. 늦은 밤이었지만 아내 수(Sue)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죠.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몰랐습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 바람도 강하게 불어 댔죠. 난생처음 본 당나귀는 안쓰러웠습니다. 이 가여운 동물은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빗방울에 축축해지고 있었어요.


바트와 수는 당나귀를 한 마리씩 몰아 실내로 들여보냈습니다. 이들에게 늦은 저녁을 챙겨주는 것으로 일과는 마무리. 우리는 다시 좁은 흰색 승합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빗소리보다 사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노부부의 집은 차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족히 3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음산한 집에는 외풍이 심했답니다.

독방을 배정받았는데 창문 틈으로 세어 들어오는 겨울바람소리가 어찌나 신경 쓰이던지요.

다행히 침대에 전기매트가 깔려있어 다행이었지만, 한동안 추위와의 싸움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여기를 떠날 때까지 부들부들 떨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첫날밤을 맞이해봅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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