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 여행에서 삽질하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평범한 여행이 아니다.

by 사람 여행자

미국 호스트 데니의 집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지금부터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전에 앞서 이 이야기는 워킹홀리데이가 아니라 배낭여행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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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의 집에 도착한 날.

즉,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저는 일종의 서약서를 받았습니다.

근로계약서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내용은 즉슨,

'근무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호스트의 책임이 없다.'

'이곳에서 겪게 되는 활동은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시험할 수 있으며, 심각한 부상이나 잠재적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예?"


비상연락처와 한국 주소까지 적으라니 이게 웬 유난인가 싶었습니다.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서류로 증거를 남기는 호스트의 철두철미한 모습을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뭐 어쩌겠습니다. 사인하고 말지요.


모든 호스트는 저마다 나름의 규칙이 있습니다.

만약 이 호스트 나쁜 사람이었다면 앞서 다녀간 여행자들이 좋은 코멘트를 남길리 없었겠죠.

저는 호스트를 고를 때, 이 코멘트를 정독해봅니다. 그리고 괜찮겠다 싶으면 메일을 보내는거죠.


설마 잠재적 사망에 이르는 일을 제게 시키겠어요?


이 뿐만 아니라 데니는 제가 일을 시작한 시간과 끝낸 시간, 그사이 휴식시간을 모두 출근부에 기록하길 원했습니다. 예전 호스트 집에서는 양심껏 일하면 됐는데, 꼼꼼하게 기록하는 그의 요구가 어찌나 엄격하던지요.

덕분에 하루 다섯 시간, 주 스물다섯 시간 일해야 한다는 규칙을 꽉꽉 채우게 생겼습니다.


그럼, 그럴 생각이 아녔냐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 조금요.


저는 여행자잖아요.

가끔은 게으름도 피우면서 여행의 순간순간을 느끼는 묘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일을 더하든 덜하든, 일부러 감시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모릅니다.

차라리 몰입해서 짧은 시간 내에 일을 해치우는 게 났지,

시간만 채우려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건 제 성격에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짧게 일하고 싶다는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서요.



처음에는 자갈을 수레에 담아 퍼 나르는 일, 잡초 덩굴을 제거하는 일 따위의 간단한 일을 했습니다.

일은 어렵지 않았어요. 다만 낮 기온이 38도까지 오르다 보니 더워 죽을뻔했죠.


사흘째부터 데니는 다른 일을 시켰어요.

제가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그늘진 곳으로 일터를 옮겨주었죠.

그곳은 공구 자재를 모아둔 창고 옆 빈 공터였습니다.

시멘트 벽돌로 쌓은 벽과 산비탈을 깎아 만든 흙벽 사이에 사람 한 명 지나다닐 공간이 유일한 일터였죠.

저는 곡괭이를 들어 흙벽을 깎아내리고 떨어진 흙을 수레로 퍼 날라 버리고 왔어요.


이번에는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흙벽은 허리가 잘려나간 산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었어요.

그 속에는 단단한 나무뿌리와 용암이 굳어 생긴 화강암이 듬성듬성 박혀있었습니다.

뿌리와 바위는 마치 뼈의 역할을 하듯 토양을 완강히 지탱했죠.

그저 벽만 깎아내리면 되는 단순한 작업인 줄 알았는데 큰코다쳤습니다.


'와. 이러다 진짜 허리 부서지는 거 아냐?'


이국적인 공간에는 눈여겨볼 게 많습니다.

한낱 잡초를 뽑는 일이나 흙벽을 파내는 일도 자세히 보면 신기해요.

풀의 생김새, 들꽃 냄새, 땅의 질감, 돌의 색깔, 다양한 벌레와 재빠른 도마뱀 새끼.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일이 힘드니까 금방 질리더라고요.

풍경 하나하나 감상할 여유가 없다고 할까요?


어찌 보면 일주일만 이곳에 지내기로 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만에 도망치고 싶기도 했지만, 복지가 좋아서 이곳에 머물 수 있었어요.


힘들게 일한 만큼 편하게 쉬었습니다.

데니의 저택에는 노곤한 피로를 녹여줄 물건이 많았거든요.


다음 편은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은 힘들었지만, 복지가 좋아 버틸 수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20대에 20개국 가기, 라는 꿈이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배낭여행을 더욱 쉽게 떠날 수 있을지 거듭 고민합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 윤경섭입니다.


혹시 질문이나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인스타그램이나 이메일, 댓글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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