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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여행자 Mar 17. 2020

노부부의 당나귀 사랑

여행 에세이 <해마다 떠났어 반겨줄 곳이 있으니까>의 샘플원고

독립출판 여행 에세이 <해마다 떠났어 반겨줄 곳이 있으니까>의 샘플원고입니다.

프롤로그와 목차 3(영국: 나의 첫 반려동물은 당나귀)을 먼저 만나보세요!


노부부의 당나귀 사랑     


  바트와 수는 결혼 적령기가 지나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린 뒤 지금까지 당나귀 농장을 운영해 왔다. 슬하에 자녀는 없어 보인다.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아도 다른 가족 구성원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흔한 가족사진조차도. 평소에도 자식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 이유가 자못 궁금해도 침범할 수 없는 사적인 영역이다.


  “우리에게 자식은 이 당나귀들이지. 뭐.”


  언젠가 수가 말했다. 자신에게는 당나귀 열여덟 마리가 자식이란다. 어쩌면 당나귀에 ‘올인’하기 위해서 따로 자녀를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나귀를 돌보는 일이나,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이나, 밤낮으로 고생하는 건 똑같으니까. 그런데 애써 키운 당나귀가 요즘 푸대접을 받고 있다.


  옛날에 당나귀는 경사가 가파른 클로벨리 마을에서 중요한 가축이었다. 허리춤에 안장을 매달아 무거운 짐을 실어 날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동식 우체국이 민원을 처리하고, 집집이 손수레와 자동차가 있다. 오늘날 운송 수단으로써 당나귀를 기르는 일은, 장을 보러 가기 위해 대형 트럭을 빌리는 것만큼이나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당나귀가 사랑받는 동물이냐? 그런 것도 아니다. 그저 보기 드문 동물이다. 희귀해서가 아니라, 유행(?)이 지났다고 할까. 애완용·식용·운송용. 무엇으로도 환영받지 못한다.


  노부부와 당나귀. 이들은 서서히 잊히고 있다. 삶의 끝자락으로,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수와 바트는 걱정이 태산이다. 본인의 건강은 뒷전이고 당나귀의 앞날을 두려워한다. 더 늙기 전에 후계자를 구해야 하는데 지원자가 없다. 요즘 사람들은 당나귀에 관심이 적다.


  “그것참. 민감한 문제네요.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당나귀라는 동물을 동화책에서만 봤어요.”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워크어웨이로 오는 여행자 전부 똑같이 말해. 그전까지는 당나귀를 동물원에서도 관심 있게 본 적이 없었데.”

  동물원에서까지 무관심을 받다니. 당나귀의 처지가 참으로 처연했다.


  “두 분이 하기에 일은 안 힘들어요? 저는 힘들어서 혼났어요. 냄새도 냄새고. 더러워진 건초 더미를 꾹꾹 눌러 담은 상자가 얼마나 무겁던지요. 허리 나가는 줄 알았어요.”

  “힘들지. 너도 보면 알겠지만, 바트랑 나는 온종일 일하잖아. 근데…. 그래도 행복해! 특히 당나귀를 잘 모르던 사람이 우리 농장을 방문한 뒤로 애착이 생겼을 때 말이야. 그렇게 보람찬 일이 없다니까? 그 맛으로 운영하는 거야. 몇몇 사람들은 매달 기부금까지 보낸다고. 당나귀를 잘 보살펴 달라고 말이야.”

  바트와 수는 당나귀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부부였다. 일한 만큼 못 벌어도 상관없었다. 진짜 부모의 마음으로 농장을 운영하니까.


  “하지만 말이야. 우리를 대신할 후계자가 있을지 모르겠어. 그저 상업적 가치로만 여긴다고.”

  “한 마리씩 입양 보내는 건 어때요?”

  “입양? 말도 마. 입양한 주인이 또 내다 팔면 어쩌려고. 그렇게 돌고 도는 거야. 무슨 중고차도 아니고 말이야.” 


  아뿔싸. 내가 말실수를 했다. 멀쩡한 피붙이를 내보내라니. 얼굴을 붉힌 수를 보니 후회가 됐다. 


  이들에게 당나귀는 애물단지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당나귀는 노부부에게 삶의 원천이다. 둘은 공생하는 관계다. 과연 그 자리를 대체할 후계자가 나타날까. 아니, 존재하기나 할까.

 

  오늘도 클로벨리에서는 당나귀와 노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고된 삶을 버티고 있다.

과거 클로벨리 마을의 당나귀.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중요한 가축이었다.


지금 읽고 계시는 브런치북을 통해서

이 책의 프롤로그&목차 3(영국: 나의 첫 반려동물은 당나귀) 원고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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