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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Oct 19. 2022

유리처럼 맑은 날들이 간다

살아있음이 감사한 날들

유리처럼 맑은 날들이 간다


깔깔거리는 아이의 웃음

대지를 감싸는 금빛 햇살

느린 춤을 추는 갈대


햇살 같은 아이가 되고

춤추는 햇살이 되고

웃는 갈대가 되어


이 순간에 머물고 싶다




맥문동 열매를 보는 계절이다. 초록잎들 사이에 장식물처럼 있는 포도 모양의 열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이것이 맥문동 열매라는 것을 알았다. 여름내 보던 보랏빛 꽃이 지면서 주는 선물 같다. 꽃말도 예쁘다. 겸손, 인내, 기쁨의 연속.


여름의 열기가 가신 이 계절의 서늘함이 맑음으로 다가온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님 댁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난 항상 울퉁불퉁한 샛길을 선택한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개발 전인 그곳의 자연을 느끼기 위해서다. 짧은 거리지만 그 길을 지나며 보는 갈대와 노을은 몇 분짜리 여행이다.

 

아빠의 건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시면서 온 가족이 비상이다. 경제적으로도 다들 힘들 때라 어느 때보다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야 하는 때에 뜬금없이 난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라고, 햇살과 갈대를 보며 감탄한다. 급속도로 건강이 안 좋아지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나마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결론에 이르고 보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도 감사하다. 자연을 만든 신의 위로. 너와 나, 우리를 사랑하는 신에 대한 믿음이 나를 웃게 하고 꿈꾸게 한다.



 

겨울을 이기고 다시 피기에 겨우살이풀이라고도 불리는 맥문동처럼 지금의 시기를 겸손과 인내의 시간으로 잘 보내고 훗날 기쁨의 시간을 맞길 기대한다.


살아있음에 흔들리고, 살아있음에 울지만, 살아있음에 웃고 살아있음에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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