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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10. 2023

나도 알아 너 꽃 아닌 거

내 눈엔 보여

"와 꽃이다~ 예쁘네. 네 사진을 찍어도 되겠어? 내가 예쁘게 찍어줄게."


"나 꽃 아니야. 그냥 봐도 꽃 아니잖아? 너 꽃이 뭔지 몰라?"


"너 꽃이야. 빛 때문에 이쪽에서 찍는 게 더 좋겠어. 보자~ 이렇게 찍은 거 어때? 예쁘지? 그런데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이 훨씬 더 예뻐. 어떻게 찍어야 하지?"


"너 진짜 네 멋대로구나. 난 꽃이 아닌데 네가 계속 꽃이라 예쁘다고 하면 내가 꽃인척 해야 해? 바보인척하고 초라한 내 모습을 약 올리려고 작정을 한 거야. 뭐 이런 애가 있어?"


"음... 화났어? 나도 알아. 너 꽃 아닌 거."


"그런데 왜? 너 미쳤어?"


"안 미쳤어. 그냥 내 눈에 네가 꽃으로 보여서. 넌 지금 내가 앙상한 가지에 붙은 마른 낙엽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넌 네 모습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너에게 향기도 나는 거 알아?"


"이런 미친. 피곤하니까 그냥 가주면 좋겠어. 난 너랑 싸우면서 내 남은 기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미안해. 이것만 말해주고 갈게. 네 모습 안에서 내가 보고 느끼는 거. 그래도 될까? 꼭 말해주고 싶은데"  


"정 그러 짧고 명료하게."


"지난해 밝은 계절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 그 향기, 너를 비추던 햇살, 흘러가던 구름, 네 뺨을 스친 바람까지 지금 너에게 다 묻어있어서 내 눈엔 그게 보여.

너 그거 알아? 내가 너로 물들고 네가 나로 물드는 거? 또 지나온 시간으로 네가 너를 물들이는 거. 넌 너의 과거 시간도, 네 주변도, 지금의 모습도 다 담고 있어.

너무 길었지? 그래도 이 말은 해야지. 넌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냈나 봐. 그게 느껴져서 난 네가 참 좋아. 내 눈에 진짜 예뻐 보이고. 네가 꽃인척 하지 않아도 네 모습 안에 다 있어. 넌 그냥 그 모습이면 돼.

그리고 나도 잘 보면 뚱뚱한 아줌마 아니고 예쁜 아줌마야. 내가 보기보다 예쁜 마음이거든. 더 말하면 진짜 화내겠다. 갈게."


"잘 가. 뚱뚱한 아줌마."


"이런 이런. 다음엔 예쁜 아줌마라고 불러줘."




너, 나 그리고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고운 빛깔로 물들길, 고운 빛깔을 알아보길, 서로의 삶이 허무함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 지켜주길 바라며 비 오는 날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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