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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Feb 26. 2023

액(厄) 땜과 상흔(傷痕) - 신앙글

상흔을 보며 은혜를 기억하는 삶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긴다는 액땜과 상처를 입은 자리에 남은 흔적, 상흔.


난 액땜을 믿지 않는다. 액땜했다고 표현하는 상황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는 사건, 사고에 대해 경각심이 필요한 순간일 뿐이다. 난 뭔가 나쁜 걸 막기 위해 운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 삶에 필요한 과정이라면 고난도 당당히 통과하고 상처와 그 상처가 남긴 흔적을 보며 은혜를 기억하고 싶다.




며칠 전 교회 청소년부 수련회가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2주간 준비해서 교회에서 수련회를 진행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기 갈망하며, 아이들을 위해 뭔가 줄 수 있는 수련회이길 욕심내며 각자의 방식으로 수련회를 준비했다. 경험이 많지 않으신 전도사님께 한 청년 교사가 얘기했었다. 더 좋은 수련회가 되도록 욕심을 내시면 좋겠다고. 이번 수련회처럼 욕심이라는 단어가 예쁘게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그 교사를 중심으로 청년교사들이 퇴근 후 새벽 한두 시까지 게임을 준비했다. 교사를 하면서도 적극적이지 않던 아들이 같이 참여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늦게까지 준비하는지 몰랐을 거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좋은 수련회를 만들겠다는 전도사님과 청년교사들을 통해 난 이미 하나님의 일하심을 봤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밤까지 짧은 일정이었지만 부족함 없이 먹고 마음껏 웃고 세 번의 예배를 드렸다.

청년교사들이 심혈을 기울였고, 아이들도 기대했던 방탈출게임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6명이 한 팀이 되어 6개의 종목을 하나씩 맡아서 하고 중간에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몸으로 하는 게임도 감동적이었다. 한 시간을 넘게 해서 간신히 35분 만에 성공할 정도로 쉽지 않았지만 누구 한 사람 싫은 기색 없이 서로 괜찮다고 격려하면서 결국은 해냈다. 각자 맡은 것을 연습하면서 안되던 것이 됐을 때 서로 안고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좋다.

세 번의 예배를 통해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지는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찬양단에 참여하고 책임감 있게 임했던 아이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씀을 듣던 몇몇 아이들을 보며, 함께 아이들과 찬양하며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오래전에 아이들과 수련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벌에 쏘여서 발이 퉁퉁 부은 채 집에 온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난 상흔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우리는 모든 쉽게 잊는다. 그래서 흔적이 필요하다. 상흔은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다. 난 그 발을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고 말씀 들으며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생각했었다.


이번 수련회를 마치고 난 응급실을 다녀왔다. 응급실 링거바늘은 병실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굵다고 한다. 손등에 남은 링거 맞은 자국을 보며 난 수련회의 은혜를 기억한다.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금요일 게임을 위해 가져왔던 밸런스보드 위에 올라갔다가 한번 넘어졌을 뿐이다. 머리를 부딪친 것도 아닌데 예배 중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서서 찬양하다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앉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아이들과 함께 찬양하다가 죽어도 행복하겠다고. 물론 지금은 안된다. 교사로 참여한 아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상처가 될 테니까. 언젠가 아들도, 아이들도 신앙이 성장해서 상처가 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온다면 그래도 좋을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 같이 모여서 게임을 하는 동안 두통약을 먹고 누워있었다. 다행히 좀 나아져서 집에 갈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토요일 수련회 일정도 잘 마쳤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수련회에 대해 교사회의를 하는데 다시 한쪽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귀를 지나 팔까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에 응급실에 가서 피검사를 하고 CT를 찍었다. 검사결과 다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왔다. 넘어지면서 충격이 간 거 같다. 아직 말짱하지 않지만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이번 수련회는 오래 기억될 거 같다.




굳이 상처 내지 않아도 삶이라는 전쟁터에 있는 것만으로도 크고 작은 상처가 생긴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이기에 하나님이 그동안 하신 일을 기억하고, 하실 일을 기대한다. 그래서 내게 상처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다.


오늘 어떤 권사님께서 내게 이런 글을 보내셨다.

'집사님 생각만 해도 위로와 격려가 되고 미소가 생겨납니다.'

이 글이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다고 말해주는 거 같았다.


상처와 상흔을 보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은혜를 기억하는 삶, 그 은혜를 함께 나누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함께 살아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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