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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Mar 04. 2023

마음약국

존귀한 너와 나, 우리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삶의 어떤 결말을 기대하는가?


몇 년 전 떠밀려 흘러가던 삶을 잠시 정지시켰을 때 난 '상처'와 '꿈'에 대해 생각했었다.

기어코 뚫려서 나는 상처, 어떻게든 뚫고 나와야만 이룰 수 있는 꿈.


막연하고 모호한 형체의 꿈. 고민의 결과인지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형체를 갖추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나의 꿈은 너와 나의 상처를 보듬는 것이고, 꿈의 성취는 눈에 보이는 위로와 사랑이다. 물리적인 공간이 있건 없건 어떤 방식이건 행위로 보이는 사랑과 위로.


같은 꿈을 꾸는 이들과 함께 지혜를 나누는 소박한 욕심을 부리며, 함께하는 이들을 어이없게 해서 한 번 더 같이 웃으며 그렇게 살다가 눈을 감으면 좋겠다.   




대학동기인 친구 약국에 근무한다. 졸업 후 30년 만에 우연히 친구가 하는 약국에 약을 사러 갔다가 친구를 만났고 9개월쯤 전부터 이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처음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난 따스한 마음의 약국 식구들과 함께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며칠 전 한 동료로부터 꿈과 관련된 의뢰를 받았다.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상해있는 다른 동료의 마음을 잠깐이라도 좀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잠시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할까? 난 마음이 상하면 먹는다. 뭔가를 먹으며 나를 다독인다. 잘 풀어가면 된다고. 난 먹을 것을 찾았고 마침 초콜릿과 과자 몇 개가 있었다. 몇 분도 걸리지 않아서 사진의 상자를 만들었다. 사실 그 상자는 명절의 선물세트처럼 과대포장이다. 그 안에는 초콜릿 2조각, 손가락 크기의 과자 2개, 그 보다 조금 큰 과자 1개가 각각 비닐에 담겨 있다. 그리고 비닐마다 우리 세 사람의 마음을 담은 메모지가 붙여있다. 그 마음이라는 건 이런 거다.

ㅇㅇ샘의 걱정하는 마음, ㅇㅇ약사님의 짜증 나는 농담, 캔디의 눈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생각나는 문구를 바로바로 적었는데 웃기는 건 내 마음을 표현한 캔디의 눈물이다. 왜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암튼 이렇게 세 개의 비닐을 다시 큰 비닐에 넣어 사랑의 선물세트라고 적어 빈 약상자에 넣어 줬다. 택배 왔다고. 그걸 받은 동료가 주소도 적어달라 해서 망설임 없이 난 약국이름을 붙였고 의뢰한 동료가 아래 글을 적었다. 능숙한 프로들처럼.

우린 이 상자로 한번 웃었다.

상자를 받은 동료는 약국 식구 중 가장 어리다. 가끔 기운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밝고 경쾌하고 다재다능하다. 방청객 수준의 리액션과 나보다 언니 같은 대사로 우리를 웃게 한다. 우리는 그 동료를 사랑해서 이것저것 조언도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난 눈에 보이는 사랑을 전해 주고 싶었다.

실제 상자는 허접하다. 상자 사진을 올려도 될까 고민하면서 이것저것을 가리려고 편집을 했고 약국이름을 고쳤다. 마음약국. 마음에 든다. 약국이름 위에도 지저분해서 내가 좋아하는 문구를 더 넣은 거다. 존귀한 너와 나, 우리.


난 하루에도 수도 없이 대화중 오갔던 말들에 관해 검색한다. 하루동안 검색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려도 재밌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 대해 검색을 하고 읽는다. 내용이 기억되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어서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에 대해서 공부가 안된다. 난 약을 파는 약국이 아니라 마음약국을 하고 싶은가 보다.

 

가족이 아닌 사람 중에는 첫 번째 의뢰인인 이 동료는 나보다 나이가 열 살쯤 적다. 그래도 난 그 동료를 보면 '안주인'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내가 생각하는 안주인은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다. 약국 식구들의 마음을 살피고 챙겨준다. 짱구를 좋아하는 동료를 위해 스티커를 사다 준 것도 이 동료다. 이 동료의 관심으로 시작된 스티커가 계기가 돼서 누구는 짱구스티커가 든 과자를, 누구는 짱구 가위를 사 왔었다. 이 동료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마음일 거다. 난 이렇게 함께 사랑하고 웃으며 근무는 이곳이 좋다.


이런 사랑이 약국 밖을 흘러 다른 이들도  상한 마음이 위로받고 잠시라도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랑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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