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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Mar 28. 2023

그리운 날에

마중지봉(麻中之蓬)

그리운 날에. 난 이 그림이 참 좋다. 곳곳에 묻힌 햇살품은 연둣빛이 따스함으로 다가오고, 건너는 이들의 발을 받쳐줬을 두 개의 나무다리가 정겹다. 게다가 이중감정을 표현하듯 이 그림은 따스하면서도 외로움에 흠뻑 젖어있다. 촘촘하게 나무가 놓여있는 다리에서 젊은이들의 삶을 보게 하고, 듬성듬성 놓인 다리에서 어르신들의 삶을 보게 한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아등바등 힘쓰고 애쓰는 젊은이들의 삶, 그럴 기력마저 사그라들었지만 뭔가를 해야 하는 어르신들의 삶.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어도 삶은 외로움이다. 거기에 더해 푸른빛 물결에 비친 다리의 그림자가 몰래 안고 있는 우리네 삶의 시름 같다. 그래도 유유히 물이 흐르고 나뭇가지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휘청이며 아름답다. 우리네 삶처럼.


며칠 전 우연히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졸업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내게 거저 받는 사랑이 뭔지 알려주신 분이다. 생일날 국수를 먹는 건 국수 면발처럼 오래 살라는 뜻이라며 자장면을 사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그동안 몇 번 뵙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연락을 못 드렸었다. 오랜만의 통화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로 전해지는 선생님의 모습은 그대로다. 표정까지 다 상상된다. 


통화를 하면서 선생님이 그림을 그리신다는 걸 알고 성함으로 검색을 했다. 인터뷰 기사를 보고 사진의 그림을 알게 됐다. 선생님이 그리신 이 그림은, 201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수상작이다. 나보다 20살 정도 많으신데 지금도 그림을 그리신다니 너무 멋지시다.


발 수술을 하고 누워계신 선생님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난 도전하고 쟁취하는 걸 못한다. 사랑이 노력해서 쟁취하는 거였다면 난 사랑을 받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다. 선생님의 거저주는 사랑 덕분에 난 사랑을 알게 됐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더 감사한 건 선생님이 지금도 너무 멋진 삶을 살고 계신 거다. 난 이런 분의 사랑을 받았던 거고 지금도 받고 있다.




어제 딸 같은 예쁜 아이의 데이트 신청이 있었다. "샘 저 한번 만나주세요." 진짜 딸이어도 좋을 이 아이의 데이트 신청에 난 바로 약속을 잡았고 오늘 만났다. 나란히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난 예쁜 아이의 옆모습을 봤다. 아이가 중학교 때 교회에서 처음 만났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직장을 다니며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 따스한 마음과 애교를 잃지 않고 잘 자란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예쁘다. 편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나도 여유를 누리고 왔다. 집에 와서 '든든한 제 편이 있는 거 같아 행복하다'는 문자를 받았다. 나도 예쁜 아이가 있어 너무 좋다.



마중지봉(麻中之蓬)

마중지봉(麻中之蓬)

삼밭 속의 쑥이라는 뜻으로, 곧은 삼밭 속에서 자란 쑥은 곧게 자라게 되는 것처럼 선한 사람과 사귀면 그 감화를 받아 자연히 선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마중지봉을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 말했다. 검게 물든 물이 어떻게 맑아지냐고. 그건 우리가 사람이기에 가능하다. 우리에겐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과 선택의 능력이 있으니까. 

선을 행하는 사람들과 선을 향한 의지가 필요할 뿐이다. 


중학교 때 내가 만난 미술 선생님처럼 나도 예쁜 아이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그리고 훗날에는 더 멋진 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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