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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n 07. 2023

미스터션샤인을 보고

여린 빛으로

아들이 보고 있어서 다시 보게 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사진에 관심을 갖고 나서 보니 한 장면 한 장면 너무 아름답다.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진지한 중에 오가는 말장난 같은 대사도 너무 좋다. "나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혼잣말을 해가며 너무 재밌게 봤다.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말을 듣고 떠오르는 말을 적으라면 난 이렇게 적을 거 같다.

대의(大義)와 생(生)과 사(死)를 오가는 상황에서의 사랑, 나라를 위해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의 마음.

그리고 가냘픔으로 이어져 온 끈질김.

그 가냘픔은 많지 않지만 신분과 상관없이 촘촘히 늘어선 사람들이고, 끈질김은 버티고 버틴 그들의 마음이다. 지금까지 그 마음이 이어져 우리는 '우리나라'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지금을 누리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명대사는 이거다.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꼭 필요하오.
할아버님껜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확실하게 꽃이 아니라 불꽃의 삶을 선택한 애신.

난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아왔을까?


잠깐 내가 그 시대,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상상을 해봤다. 난 대의나 사랑의 중심에 들어가기보다 외로움을 뚝뚝 흘리고 다니는 애순의 친구가 되고 싶다. 아이를 못 낳는다고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맞고, 친정에서 폐물을 훔쳐 전당포를 들락거리며 도박을 하고, 할아버지에게 애신을 고자질하는 애순이. 모두가 혀를 차는 애순의 친구.

많은 사람들 중 애순이 유독 눈에 들어온 건 웃는 표정 때문인 거 같다. 남편에게 맞고도, 소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보여준 그 표정. 겸연쩍어서인지, 여자는 웃어야 한다고 배워서인지, 웃고 싶은 내재된 욕망의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웃는 상일수도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난 애순이 정말 행복해서 웃길 바랬다. 나의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그렇게 해주고 싶다.

내게 애순을 행복하게 할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남편을 같이 욕하거나 좀 더 건설적인 삶을 살라고 설교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옆에서 멍든 애순의 얼굴을 어루만져주고, 애순이 원한다면 소실의 아들에게 줄 빵을 함께 고르고, 함께 행복한 상상을 하고, 함께 거리를 거니는 거다.

언제든 힘들 때 찾아갈 곳이 되어주고, 안길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는 거다. 그리고 말해주는 거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넌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넌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오랜 바라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 시간을 통해 애순은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전의 모습에 머무르지 않을 거다. 구석에 처박혀 먼지 투성이던 골동품이 누군가의 손에서 그 가치를 되찾는 것처럼, 애순의 역량이 드러나게 될 거다.


불안정한 시대 안에서 한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있어도 없어도 그만일 것 같은 여린 빛.

난 그런 여린 빛 같은 삶을 살고 싶다.

나의 시선이 향하는 대로.


나만의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 읊어본다.

“나도 그렇소. 나도 빛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여린 빛이오."


좀 웃기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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