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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Nov 21. 2023

당신은 제게 지는 해와 같습니다

날마다 함께 기적을 꿈꾸며

당신제게

지는 해와 같습니다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모두를 금빛으로 감싸 안은 당신


당신은 말하죠


사랑한다고

넌 이만큼 아름답고 존귀하다고


당신 몸으로 직접 보여주고

말없이 사라지겠죠


그 아름다움에

전 말없이 울 겁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 대성통곡을 하겠죠

당신이 없는 공허함에


그때도 당신은 여린 빛 남겨

나를 감싸 안고 달래줄 겁니다


괜찮다고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라고

 

내가 이 사람들한테

너를 부탁했다고


나와 함께 있는 것처럼

이 사람들과 함께이면 된다고


지는 해가 유난히 아름답다. 어느 상황에서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 같다. 그 사랑은 이렇게 말할 거다. 넌 존귀하고 아름답다고. 옆에 있는 이들과 행복하면 좋겠다고. 옆에 있는 이들에게 너를 부탁한 것처럼 너도 그들 옆에 있어주라고.




며칠 전 비가 왔을 때, 창밖을 보면서 '비가 눈이 되길 바라는 이유'를 끄적거렸었다.

비와 눈은 내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는 아저씨라면 눈송이는 어느새 나를 따라오고 있는 아이 같다. 눈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와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내게 좀 더 오래 머물기에 비가 눈이 되길 바란다.

그런데 무엇보다 비가 눈이 되길 바라는 이유는 '투명의 빗방울이 흰색으로 변하는 기적을 볼 수 있어서'이다. 과학적으로는 기적이 아니지만 내 눈엔 기적이다. 변하지 않을 거 같은 상황의 변화가 내겐 기적이다. 난 사소한 작은 기적들을 경험하고 기적을 기대한다.


그제도 난 작은 기적을 경험했다.

9년 전 교회가 문을 닫을 때, 중고등부 교사였던 난, 한 아이 때문에 아이들을 흩을 수가 없었다. 그 아이 집과 전에 있던 교회 위치, 우리 집을 고려해서 무작정 지금의 교회로 옮겼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주일에 언제라도 이곳에 오면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켰다. 드문드문이었지만 교회에도 오고 연락도 됐었는데 몇 년 연락이 끊겼었다.

주일 저녁, 다니엘기도회 예배를 드리는데 그 아이가 밝은 미소를 머금고 들어왔다. 꼭 나를 보러 온 건 아니지만 그 아이를 보면서 아이 키만큼 커다란 선물을 받은 마음이었다. 아이 키가 180은 될 거다. 중3 때 처음 만나서 아이라고 표현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직장을 찾는 어엿한 성인이다. 내가 그동안 꿈꿨던 것처럼 교회가 아이에게 찾아갈 장소가 된 것도, 내가 만나서 반가운 사람이 되고 기쁨으로 추억을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내겐 작은 기적이었고 감사였다.


기적을 기대하고 바라보는 삶은 설렌다. 난 이제 낙엽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다. 내 눈에 낙엽은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나는 아이들 같다. 나이 듦도 외모도 중요하지 않다.


이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는데 몇 달 사이 갑자기 노화가 심해졌다. 게다가 여태 버티고 있던 유치(乳齒)가 빠져서 잇몸사이 깊숙이 박혀있던 영구치를 강제로 빼고, 임플란트를 위해 심을 박았다. 며칠을 퉁퉁 부은 볼과 입술 때문에 오랑우탄이 생각나는 모습으로 지냈다. 전에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 기적이라면 난 나에게서도 기적을 경험했다. 그 모습으로 당당히 다니고 통증에도 깔깔거리며 생활했으니까.  


사실 더 큰 기적이 있다. 이건 내가 그린 자화상이다.

언니에게 받은 12색 오일 파스텔로 그린 거다. 처음부터 이 그림을 그리려고 한 건 아니다. 차분하게 공부하고 시도하는 성격이 아니라 15분짜 오일 파스텔 기초 동영상을 보고 파스텔을 잡았다. 여러 가지 색을 칠하고 덧칠도 해보고 포크와 칼날로 긁다가 망쳤다. 그냥 버리기가 아쉬워서 눈, 코, 입, 얼굴 형태를 그리고 보니까 나랑 너무 많이 닮아서 나의 자화상이 됐다. 나의 외모와 경험과 생각이 표현되고, 나를 둘러싼 보호와 사랑까지 담고 있다. 꿈보다 해몽이긴 하지만 맘에 든다.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이 그림을 그리고 나서 난 나를 칭찬해 줬다. 잘 그려서가 아니라 시도해서.

전 같으면 잘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서 시도조차 안 했을 거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보기에 이건 큰 기적이다. 옆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부추기는 언니와 아들들 덕분이다.


하나가 무너지만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 나쁜 의미로 생각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하나의 장벽이 무너지면 그 장벽 또한 연쇄적으로 무너질 거다. 이 그림을 시도하면서 난 여러 가지 시도하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앞으로 더 큰 기적을 기대한다.


지는 해와 같이 아름다운, 어느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사랑한다.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그 사랑은 말한다. 너는 아름답고 존귀하다고.

삶이 여행이고 소풍이라면 난 이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기적을 경험하며 설렘으로 그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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