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발끝에 사각이던 낙엽마저 숨을 죽이고 말없이 비를 맞는다. 낙엽은 많은 걸 안다. 오랜 시간 나무에 붙어있으면서 위에서 내려다봤고, 나무에서 떨어진 후로는 여기저기 뒹굴면서 아래서 올려다봤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의 눈물 같은 비를 소리 없이 맞아야 한다는 걸 안다. 그게 위로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이런 것도 사랑일까? 갈대는, 경쾌한 몸짓으로 갈대를 스치고 지나가던 바람을 잊을 수 없다. 그 바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기다림이다. 오지 않을걸 알기에 기다린다고 하지 않을 뿐이다. 표정 없는 슬픔은 대책이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낙엽은 지금 갈대의 마음이 되어 말없이 울지만, 낙엽은 다시 갈대가 환하게 웃을 거라는 걸 안다. 갈대의 원래 모습을 아니까. 지금은 갈대에게 어두움이 드렸을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여러 종류의 사랑은 갈대에게 스치는 바람 같은 건지도 모른다. 아무리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치장을 해도, 낙엽이 비 되어 흩날리고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가을 같다. 멋지지만 금세 부수어질 만큼 약하기에 슬픔으로 고정시켜 놓아야 하나 보다. 그래도 괜찮다. 빛과 어두움을 오간다 해도 네 모습은 변하지 않으니까. 또다시 사랑을 입고 사랑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