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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Dec 04. 2023

세모가 동그라미에게

세모여도 괜찮아. 


언제부터였을까?

너와 나 두 손을 꼭 잡고 걸어온 게.

물살 위에 있는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우린 손을 놓지 않았지.


너와 손을 놓는 것도 두렵고, 물도 무서워서 난 너무 난감했어.

넌 씩씩하게 앞서가며 세심하게 건너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데

난 도무지 엄두가 안 나고 화가 났어.


왜 화가 났을까? 

너도 나처럼 겁쟁이길 바라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난 용기를 내서 네가 말한 대로 한걸음을 크게 뗐어.


물에 빠져서 징검다리 위로 건너는 걸 포기했지만 

물속에서 네 손에 의지해서 한 걸음씩 나아갔어.

네 말처럼 징검다리를 지나 건너편으로 가기만 하면 되니까.


언제부터였을까? 

너를 그렇게 의지한 게.

두렵고 힘들었지만 다시 너에게 손이 닿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어. 


징검다리를 지도 삼아, 의지할 물건 삼아 걷고

힘들면 징검다리에 앉아 쉬면서 다시 행복해졌어.

힘겨움에 화를 내다가도 어느새 내 웃음에 함께 웃는 네 덕분에.


얼마나 남았을까?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이.

두려움도, 힘겨움도 서로의 웃음으로 흩어지고 서로의 온기로 따스한데.


언젠가 혼자만 지나가야 하는 길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럼 넌 뒤에 온다고 할 거야. 바보처럼 무서워서 못 가는 날 두고 가면 안 된다고.

그럼 난 언제든 뒤처져도 날 안아줄 널 믿고 아이처럼 뛰어갈 거야.


넌 나에게 언제나 정답이라 동그라미야.

난 너에게 짐이 되지만 널 조금은 웃게 해서 세모고.

널 만난 건 행운이야. 고마워.




이 밤 누군가는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거 같아 미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지만 그건 마음뿐이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난 나를 세모라고 부른다. 그나마 내가 엑스가 아니라 세모인 이유는 아직 웃음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며칠 심하게 아프면서 알았다. 나의 장점은 생기와 웃음이라는 걸. 웃지 않는 나는 못난이 인형 같다.


아마도 스스로를 동그라미라고 생각하는 이들보다는 나처럼 세모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거다. 난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의 웃음이 동그라미에게 위로가 될 테니까. 누군가 스스로를 엑스라고 생각한다면 세모가 되는 방법은 엄청 간단하다. 주위에 감사하면서 웃으면 된다. 활짝 웃지는 못해도 어설픈 미소라도. 주위가 아무리 욕 나오는 상황이어도 잘 보면 누군가는 있을 거다. 

나도 그 누군가가 되어 따스한 미소를 보내주고 싶다. 그렇게 우리 모두 세모로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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