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지 말고 천천히 가"
"엄마, 나 50이 넘었어"
엄마와 나의 대화다.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아프다고 쉬고 있는 딸은 그야말로 걱정 한아름이다.
얼마 전 내 차로 병원을 함께 갔던 엄마가 20만 원과 함께 편지를 쥐어줬다.
엄마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다. 어제 하루 종일 고민해서 엄마의 편지를 그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써 본다.
엄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외할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자라셨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새엄마 밑에서 자라셨는데 낳은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었던 거 같다.
엄마를 특별히 예뻐하신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좋은 집에 결혼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알아보고 아빠를 고르셨다. 친할아버지는 육사 출신의 장군이셨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셨다. 친할아버지는 재혼을 하여 정작 자신의 자녀들은 돌보지 않으셨는데 외할아버지는 그걸 미처 알지 못하셨다. 아빠도 친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증조할머니 손에 자라셨고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셨다.
결혼 후 학원을 운영하시던 아빠가 몸이 안 좋아지셨고, 학원을 접고 이사를 하면서 엄마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결혼 전에는 부유한 집 딸로 풍금을 치고 자수를 놓으면서 우아한 생활을 하셨던 분이, 둘째인 내가 태어날 때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물국수로 배를 채우셨다고 한다.
엄마는 딸만 다섯을 낳으셨다. 딸들만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딸들도 직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으셨지만 공부하기도 힘들다고 집안일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가 운영하시던 가게 일을 돕고 집안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으셨다. 하루하루가 고단하셨을 텐데 엄마는 다섯 딸들이 저마다 재잘거린 소리를 다 들어주고 기억하셨다. 나도 잊어버린 내 친구 이름까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친구가 엄마랑 싸우는 걸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우린 엄마랑 싸울 일이 없었다. 그냥 엄마 혼자 다 힘들었으니까. 경제적으로 어려웠어도 100원 달라면 200원을 주셨다. 엄마는 아침에 야단을 치면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쁠까 봐 아침에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셨다. 급식이 없던 시기라 저녁까지 도시락만 7개를 싸야 했는데, 따뜻한 밥을 먹으라고 저녁 먹을 시간에 도시락을 학교에 갖다 주기도 하셨다. 그동안 가게를 비워야 하기게 아빠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가면서.
딸들이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엄마는 딸들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셨다.
엄마는 아들이 없어서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시고 부당한 것도 못 참으신다. 엄마가 어릴 적 순둥이였다는 얘기를 하면 우리는 그럴 리가 없다고 놀린다. 딸들을 보호해야 했기 때문에 거친 풍파 앞에 굴복하지 않고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론 아들이 있었어도 엄마는 강인한 사람이 되었을 거 같다. 엄마라는 이름이 지금의 엄마를 만들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강한 면만 있는 건 아니다. 엄마는 공감능력이 뛰어나시다. 타인의 어려움이 당신의 어려움 인양 마음 아파하시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신다. 길에서 파지를 줍는 분이 계시면 파지를 모아 주시고 도움이 필요한 손길에는 기꺼이 도움을 주신다.
김: 김장을 100포기씩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 많은 것을 혼자 했을까 싶다.
정: 정성스레 키웠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이었기에 늘 딸들에게 미안했다.
희: 희희낙락하며 사는 지금 새벽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장난 삼아 당신이 쓰신 당신 이름 삼행시. 엄마의 삶이 그대로 들어있다.
엄마는 거친 풍랑이 이는 삶의 바다에서 두 팔을 벌려 딸들을 보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거 같아 미안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풍랑을 막지는 못했지만, 풍랑을 막느라 피곤하고 지친 엄마의 연약한 팔은 온전히 우리 가슴에 새겨져, 거친 파도를 마주할 때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의 사랑에 굶주려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되길 갈망했던 우리 엄마.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형편에 딸들을 왜 대학에 보내느냐는 주위의 비난을 들으며, 등록금이 나올 때면 잠을 못 자던 우리 엄마.
수동 세탁기에 물을 넣을 때마다, 다섯 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꽃으로 보이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우리 엄마.
어려운 환경에서 무언가 하나를 사주고 싶어도 5개를 사야 하는 게 얼마나 버겁고 힘들었을까? 순간순간 혼자 얼마나 지치고 외로웠을까?
누군가는 결핍을 자연스레 결핍으로 대물림하고, 누군가는 결핍을 사랑으로 채워주느라 갑절 힘든 삶을 살기도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엄마의 희생으로 거친 풍랑이 이는 삶에서도 따스함 한 조각을 부여잡고 있다.
엄마의 보호 속에서 자라서일까? 난 엄마만큼의 모성애와 강인함이 없다. 쉬면서 생각한다. 엄마가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엄마가 지금의 나라면 쉬고 있지 않으셨을 거다. 엄마 삶에서 엄마만을 위한 시간은 없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데 엄마를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을 엄마다.
한때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천사표 엄마 때문에 마마걸처럼 자랐고, 누구도 사춘기를 보내지 못했다. 엄마가 얼마나 우리를 위해 애쓰며 사셨는지 알았으니까.
엄마처럼 사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엄마가 맞서 온 삶의 풍랑이 얼마나 컸는지 보인다. 그래서 과보호하고, 그래서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겠구나.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건 누구에게도 버겁다. 한평생의 수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고,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며 원망을 듣기도 한다. 난 삶의 방법이 아니라 매 순간 선택의 동기와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모습이 허망해 보일지라도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려고 애쓰며 살아오신 부모님들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감히 그 사랑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엄마는 딸들이 다 성장한 후에도 풍족한 삶을 누리시지는 못한다. 그래도 고생의 보람으로 손자, 손녀들에게도 존경받으며 따스함을 누리며 살고 계신다. 엄마처럼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삶을 잘 살아 내고 싶다.
훗날 엄마 나이가 돼서 나도 엄마처럼만 살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