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하늘에 구름이 간다.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웃고 떠들고 춤춘다. 서로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며 슬픔을 뿜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버린다. 나뭇가지들이 잡아도 소용없다. 생긴 건 순둥순둥한데 하는 건 매몰차다. 그래도 지나가는 구름 덕분에 예쁜 하늘이다.
구름을 보며 '오늘'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오늘. 누군가는 고대하고, 누군가는 오지 않길 소원하는 삶의 시간, 오늘.
언젠가 엄마가 그 '오늘'처럼 기버린다면 어떨까?
그래도 될까
오늘을 따라가는 너의 길에
내가 서 있어도 될까
가면 안 된다고 너를 막고 서서
서럽게 울어도 될까
두려움에 흔들리는 네 손을 잡고
함께 가자해도 될까
너와의 남은 시간을 지금처럼
그냥 그렇게 보내도 될까
너에게만 강요했던 온유함을
이제 개나 줘버려야겠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다.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게 되면 아무리 큰 기쁨과 웃음도, 대립과 불화도 결국엔 눈물 되어 흐를 거다.
오늘이 지나면 언젠가 눈물로 흐를 추억이기에, 다른 이들과 함께하며 생기는 상처와 슬픔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벼이 보려 한다. 구름 덕분에 예쁜 하늘처럼, 울고 웃는 오늘이 삶의 고운 여운일 테니까.
연이어 비가 온다. 장마가 시작됐나 보다. 창문을 타고 내리던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쳐 깨지며 바닥을 뒹군다.
아빠가 병원에 계셨던 지난여름, 나에게 빗소리는 집에 오고 싶은 아빠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마음이 무너지고 눈물이 흘렀던 그때 생각에 눈물이 다시 흐른다.
라일락 꽃 향기가 유혹해도
난 네가 생각나지 않는다.
비염이다.
망했다.
약을 먹었구나.
약효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다가 눈에 들어온 부분이다.
작년 이맘때, 그날 밤도 비가 왔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아빠가 급하게 응급실로 옮기셔서 병원에 가는 전철 안이었다. 전철을 타고 보니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었고, 병원으로 가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쓴 글이다. 짝사랑에 대한 내용으로 망했다 시리즈를 쓰면서 웃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와중에 내가 왜 그랬는지 그때는 몰랐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에 대한 슬픔이 어느 정도 걷히고 알았다. 그때 내가 얼마나 힘겨운 마음이었는지.
아빠의 투병기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동원하며 눈물이 나도록 웃었던 건 나에게 건네는 나의 위로였다.
삶은 누구에게나 외롭고 버겁기에, 만나게 되는 이들과 잠깐이라도 함께 웃는 게 내 삶의 철학이다. 그때 난 그 마음으로 힘겨운 나를 웃게 해주고 싶었나 보다.
빗줄기가 거세진다. 우산이 없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맞으면 되니까.
비가 안 오는 것처럼 그냥 가는 것도 재밌다. 우아한 척 걷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경쾌하게 걷기도 하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영화에서 처럼 겉옷을 머리에 쓰고 뛰면 된다.
삶의 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난 잠깐이라도 함께 웃는 웃음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삶을 꿈꾼다. 타인과의 관계는 사소한 것으로도 크게 흔들리기에 그 깊이가 의심스럽다. 또 사랑의 마음으로 건넨 위로의 말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위로를 하고 되레 상처받기도 한다. 나를 소모하고 상처만 남을 테니까 결국 난 바보 같은 삶을 꿈꾸는 거다.
그래도 괜찮다. 너에게,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그리고 언젠가 알게 될 거다. 그 웃음이 진심으로 전하는 위로였던 걸.
아가야,
상처 난 마음을 감싸줄 수 있다고 생각한 보랏빛 향기는
콧물을 흘리게 하는 강아지의 털이었나 봐.
아가야,
그래서 미안해.
아가야,
네가 바라보는 파란 하늘에는
흰빛도 있고 노란빛도 있어.
잘 보면 네가 좋아하는
햇살 받은 연둣빛도 보일 거야.
푸른빛이 서늘함으로 다가와 마음이 시리면
잠시 멈춰 서서 다른 빛깔을 찾아봐
마음 덮어줄 따스한 빛깔에
미소가 지어질 테니까.
내 글은 착하다. 그렇다고 내가 착한 건 아니다. 난 가끔 나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매일 사랑타령하면서 네 모습은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내 사랑의 크기가 티끌만큼이기 때문이다.
난 타인의 기대에 맞출 생각이 없다. 난 내 그릇대로 살아가려 한다. 티끌 같은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티끌 같은 사랑을 선택하면서.
난 나의 사랑이 티끌 되어 누군가의 균형 잡힌 저울을 행복으로 기울이길 바란다. 만나는 이들에게 받는 상처가 비가 되어내려도, 비가 오지 않는 듯 만나는 이들과 함께 웃으며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티끌만큼의 사랑으로.
부족한 모습이라고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 당당히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며 가던 길을 가면 된다. 가다 보면 나의 일기 한 페이지에 함께 해서 좋다는 이들을 만날 거다. 함께 깔깔거리며 비를 맞고 가는 거다.
왜 네 사랑은 그것밖에 안되냐고 묻는다면 소리는 내지 말고 아래 그림을 보고 한번 웃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