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유튜브를 보면서 포토샵을 배운다. 동영상을 보며 따라 하다가 포기했는데 놀다 보니 재밌는 사진이 만들어졌다. 똑같은 사진 2장을 합성해서 만들었는데 결과는 전혀 다르다.
왼쪽은 혼합 모드 중 스크린, 오른쪽은 광도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혼합 모드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모습과 주변인들의 모습이 합해져 한 컷을 만들어 낸다. 살면서 내 모습도, 주변인들의 모습도 달라지고 색도 달라진다. 나와 주변인들의 순간순간이, 연결된 사진이 되어 한 편의 영화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함께 거대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난 지금 갱년기 우울증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글을 쓰고 있으니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돌아보면 2년 전쯤부터라고 생각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평상시와 다른 나의 모습에 가족들이 걱정했고, 키다리 아저씨(키아)를 보냈다.
뚱룡아, 뭐가 힘들어? 힘든 걸 말해봐.
글쎄... 잠시 생각하다가 그냥 사소한 이야기들을 줄줄 이야기했고, 가만히 듣고 있던 키아가 말했다.
힘든걸 조금이라도 덜어내야 하는데 다른 건 내가 해줄 수 없고, 가장 쉬운 건 돈이야.
그리고 통장에 돈을 입금해줬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본 노을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 순간 내 삶의 사진도 노을처럼 은은한 밝은 빛을 띤 거 같다.타인 덕분에.
그날 이후도 예고 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난 지금도 그때 노을을 봤던 순간이 생각난다.
갱년기 우울증이 오기 전까지 난 우울증과 전혀 상관이 없을 거 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힘들 거 같다고, 괜찮냐고 묻는 경우가 있었다. 난 괜찮다고.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떤 마음일까를 고민했었다.
그렇게 맞으면 얼마나 아파? 궁금하다면 맞아보면 제일 확실하다. 작년 여름에 자다가 숨이 안 쉬어지는가 같아 깼는데 다시 누우면 숨을 못 쉴 거 같아 응급실을 갔었다.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고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공황장애라고. 특별한 일도, 크게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었고 쉬고 있었는데.
아직 제대로 맞아본 건 아니지만 난 그날 처음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공포를 이해하게 됐다.
무너진 마음은 모든 것에 민감하다. 모든 세포가 귀를 쫑긋 세우고 고통과 통증을 듣고 지들끼리 쑥덕인다. 예전처럼 그냥 깔깔거리며 웃어넘기지 못한다. 걱정 근심 가득이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놔뒀다. 얼른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에 귀를 닫고. 그동안 애썼으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았는데 그래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누군가는 너무 우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무력함에 손하나 까딱할 힘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울증은 못나서 생기는 증상이 아니다. 지금 우울하지 않은 사람도 후에 우울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멈춰 서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경험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봤을 스펄전 목사님은 위대한 설교가이자 열정적인 사역자였다. 그분은 사역기간 내내 질병으로 인한 통증과 심각한 우울증 겪으셨고, 주변 상황은 우울증을 더 심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몸이 안될 때는 쉬면서 꾸준히 사역하셨고, 목사님이 겪는 고통과 말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 우울증을 검색하다가 이분의 삶을 보았고,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함께 삶을 이뤄가는 사람들이고, 나이가 들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만날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 우울은 극히 일부분이고, 난 하룻강아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울이 삶을 무너뜨릴 때 치료의 도움을 받으며 부러지지 말고 버드나무 가지처럼 그냥 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돈이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때로는 화려한 사진, 때로는 무채색 사진들을 계속 만들어내며 멋진 영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