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위한 기도
팔공산 자락을 걷다 처음으로 솟대를 봤다. 그게 솟대인 줄도 몰랐다. 그저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기둥 위에 작은 새 하나가 앉아 있는 모습이 이상하고도 인상적이었다.
사진을 검색해서 그것이 솟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솟대에 대해 검색을 이어갔다.
솟대는 나무나 돌로 만든 새를 장대나 돌기둥 위에 앉혀 마을 수호신으로 믿는 상징물이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솟대를 '진또배기'라고 부른다. 새가 사람과 하늘(신)을 이어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젊었을 때 봤다면, 난 그저 미신으로만 여기고 지나쳤을 것이다. 난 지금도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면 다른 것이 보인다.
“간절함, 갈망.”
솟대를 만들고 바라봤을 사람들의 간절함. 뭐라도 의지해야만 했던 순간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솟대는 뭘 빌었을까?’
그때부터였다. 내 마음속에서 하나의 상상이 자라났다.
솟대가,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슬펐다고. 무엇을 빌어야 할지 몰라 외로웠다고.
솟대는 오래도록 서 있었다. 사람들의 기도를 머리에 이고,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채.
누군가는 말했다.
“솟대는 사람들의 소원을 하늘로 전해주는 나무야.”
하지만 솟대는 슬펐다. 행복이 어떤 모습인지, 풍요가 어떤 냄새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무들이 다가왔다.
“우리도 처음엔 몰랐어. 하지만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알게 됐어.”
구름이 내려와 솟대의 어깨에 앉았다. 햇살이 조용히 솟대의 마음을 물들였다.
솟대는 꾸며졌다. 나뭇잎이 귀처럼 달리고, 꽃잎이 가슴처럼 붙었다. 구름과 바람이 머리칼처럼 흘렀다.
솟대는 세상을 처음으로 느꼈다. 아이의 웃음, 어머니의 기도, 노인의 손, 바람에 날리는 밥 짓는 냄새까지.
그제야 솟대는 꿈을 꾸었다.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걸 빌고 싶다고. 그들의 하루, 그들의 상처, 그들의 숨결을 닮은 기도를.
그래서 솟대는 다시 하늘을 향했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바람과 나무, 구름과 햇살이 함께였다.
솟대의 기도는 더 이상 막막하지 않았다.
이제 솟대는 안다. 하늘에 닿는 건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서 피어난 진심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 만큼 느끼고, 경험한 만큼 깊이가 생기고, 아팠던 만큼 다른 이를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솟대가 하늘을 향해 있지만, 결국 사람의 삶을 모르고선 그들을 대신해 진짜 기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어야 하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 첫 번째 그림을 통해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두 번째 그림은 노란색과 붉은색을 칠한 투명 필름을 앞에 대고 첫 번째 그림을 다시 찍은 장면이다.
아마도, 꿈을 꾼다는 건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지금 보이는 현실 너머를 상상해 보는 일이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작은 시작이 되지 않을까.
같은 세상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솟대가 꿈꾸는 순간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면, 그 세상을 미리 상상하며 가는 거다. 간절함으로 꿈꾸며 바라보는 세상은 분명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당장의 변화가 없어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삶이길 바란다.
내 상상 속 솟대의 꿈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품은 기도였다.
누군가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조용한 갈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