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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묻힌 입가의 케첩

창작과 미각

by HAN

저작권 글 공모전 광고를 보고, AI에게 저작권에 대해 물었다.

AI는 여러 각도에서 조리 있게 설명해 줬다. 그런데 설명을 듣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AI를 이용하고 있는 나는,
타인의 것을 훔친 것도 아니고, 안 훔친 것도 아니다.
어쩌면 핫도그에 발린 케첩이 내 입에 묻었을 뿐인데,
나는 핫도그를 먹은 것처럼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법정에 세워봤다.


재판관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왜 다른 사람의 핫도그를 먹었습니까?”


나는 당황한 얼굴로 대답한다.
“저는 핫도그를 먹지 않았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핫도그 주인이
저 입술 좀 보라며 소리친다.


재판관이 다시 묻는다.
“그럼 당신 입술에 묻은 케첩은 뭐죠?”


나는 순간 머뭇거렸다.

케첩이 내 입에 들어간 건 사실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핫도그를 들고 있다가 내 얼굴에 부딪혔고,
그 순간, 빨간 케첩이 내 입술을 파고들었다.

나는 핫도그를 먹지 않았다.
케첩을 먹을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되묻는다.
“케첩이 조금 닿았을 뿐인데, 정말 죄가 될까요?”




AI를 활용한 창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내가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AI는 도구로만 사용한다고 해도
결국 AI는 수많은 타인의 창작을 학습한 존재다.

그 도움을 받았다는 건,
이미 내 입가에 케첩이 묻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AI를 쓰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AI는 앞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도구가 될 것이다.
사용 범위는 계속 넓어질 것이고, 나 역시 그렇게 쓰고 있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건,
알게 모르게 빠져드는 케첩의 맛이다.
쉽고 빠른 길을 알아버린 쾌감.
그 쾌감이 어느 날 내 미각을 앗아갈까 두렵다.


시를 쓰고 AI에게 수정해 달라고 하면,
생생했던 날것의 감각은 사라지고
매끄럽지만 밋밋한 문장만 남는다.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통해,
언젠가는 창작자들의 AI 의존도도 줄어들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입에 묻은 케첩’을 의식하며 쓰고 싶다.

그 자각이야말로 타인의 창작을 존중하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케첩이 묻었다는 걸 모른 척하지 않고 바라볼 때,
비로소 내가 쓰는 것과 남이 만든 것의 경계를 구분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창작자로서 가장 두려운 건 어쩌면 ‘미각’을 잃는 일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나만의 언어, 나만의 세계.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그것이 아닐까?



KakaoTalk_20250504_231407943.jpg 손톱 하나 더 달린 손가락 - 미각을 잃은 창작물

나는 그 미각을 잃어버린 창작물들을 그림으로 표현해 봤다.
손톱이 하나 더 달린 손가락들.
그것은 내가 생각한, 미각을 잃은 창작물의 모습이다.


AI를 통한 끝없는 욕망의 확장은,
어쩌면 창작이라는 뱀 위에
불필요하게 발을 그려 넣은 ‘사족(蛇足)’ 같기도 하다.

처음엔 더 좋아지길 바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너무 많은 것이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실제로 나 역시 이 글을 AI의 도움을 받아 다듬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타인의 창작을 존중하는 것이, 결국 나를 존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입에 묻은 케첩을 무시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그게 우리가 ‘미각’을 잃지 않고 창작자로 살아남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맛을 기억하는 창작자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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