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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자 빚, 거저 받은 사랑에 대하여

웃는 얼굴로 다가온 기억

by HAN

지난 시간의 기억은 때로 아프고,

때로 다정합니다.


그동안 저를 '눈을 부릅뜬 얼굴'로 그리게 했던 기억들은

이제 힘을 잃었습니다.

빛을 머금고 조금은 온화해진 얼굴에 이어

오늘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그렸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로운 기억을 꺼냈기 때문입니다.

그 웃음은 제가 받은 사랑의 얼굴입니다.


마음 메마른 저에게 닿았던 따뜻한 손길,

이유 없이 건넨 시선,

지난 시간의 또 다른 기억들이 그림이 되어 웃는 얼굴로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때, 특별히 저를 잘 대해주셨던 미술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수학 경시대회를 준비하던 날, 컵라면을 간식으로 챙겨주셨습니다.

컵라면은 당시 막 나올 무렵이었고, 저는 처음 받아본 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물을 부어주시고 가셨는데, 함께 먹고 싶어 기다리다가 결국 불어버렸죠.

정작 먹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지금도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생일엔 선물을 주시기도 했고, 면발처럼 오래 살아야 한다며 짜장면을 사주신 적도 있습니다.

왜 그렇게 이유 없이 잘해주시냐고 가족들이 농담처럼 '혹시 그 선생님 간첩 아니냐'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모든 기억이, 아직도 희미하지만 따뜻하게 남아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엔 화학 선생님이 조용히 공부하라며 화학실 열쇠를 맡겨주셨습니다.

졸업식 날, 감사 인사를 드려야 했던 건 제 쪽이었는데,

오히려 선생님께서 저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대학 땐 담당 실험반 교수님이,

회사에선 이사님이,

각자의 방식으로 저를 믿어주시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마음들을 거저 받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저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고,

지금도 힘든 순간마다 그 마음들을 떠올립니다.


잊고 있던 그 사랑이

스승의 날을 맞아 다시 제 마음의 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거저 받은 사랑은 때로 내 삶을 밝히는 빛이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할 빚이기도 합니다.


제가 거저 받은 사랑을

저 또한 누군가에게 나누는 삶을 꿈꿉니다.

그 사랑은 빛처럼 흘러가고,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을 또다시 밝혀줄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합니다.

제 그림과 글은 잘 그리고, 잘 써서가 아니라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저장하는 방식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에 대한 삶의 방향이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을 기억하며 오늘,

또 하나의 사랑이 제게 닿았습니다.


한 청년에게 조각 케이크와 메모를 받았습니다.

교회 중고등부 시절 함께했던 아이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이 녹차로 유명해서 윤정쌤이 생각났어요.”

그 말과 함께 전해진 달콤한 조각은,

제가 거저 받은 사랑이 또다시 누군가에게 닿은 것 같았습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조금씩 사랑의 빚을 갚아갑니다.

이유 없이 다정하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어른.

그런 어른이고 싶습니다.


중학교 시절 미술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다른 분들께 한 번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을 기억합니다.

표현하지 못했어도 제 마음에 항상 남아있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지금도,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메마른 마음이 웃는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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