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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무 ① – 나비손을 하고 눈을 감아봐

슬픔에 무너지는 너에게

by HAN
기억나무는 두 편으로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던 마음,
그 안에 남아 있던 다정함과 지난 사랑을 기억하며
다시 행복하기로 결심하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나비손을 하고 눈을 감아봐

나를 안아주고 돌아서던 너를 보며,

나는 늘 슬펐어.


넌 그때 정말 어렸는데,

왜 그렇게 깊은 슬픔을 안고 있었을까.


오늘에서야 알았어.

슬펐던 건, 네가 아니라 나였다는 걸.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그저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


미리 대비하고,

준비한 걸 활용하며

조금 더 영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저 서서 추워하고,

‘이 정도는 괜찮아’ 웃던 나—

바보 같지?

그런데 난 안쓰러웠어.


그 마음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야.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나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바라봐.


어른들의 말씀이 떠올라.

“조금 늦춰졌을 뿐,

결국 그렇게 흘러가게 돼.”


사랑하려고 애쓴 삶도,

애쓰지 않은 삶도,

결국 멈춰 선다면—

우리가 손 내민 시간들은 무슨 의미였을까?


잠깐 지연된 그 시간이

허무에 무너지게 될 그 시간이—

그건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을까.


가까워진다는 건,

내 삶의 무게를 함께 느끼는 건가 봐.

잘되라고 건넨 말이,

내 삶의 무게가 무겁다는 신음 같아.


떠날 준비를 해야겠어.

미련 없이, 훨훨 떠나는 거야.

모험을 하는 아이처럼.


흔들리는 바람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멀리서 손짓하는 꽃향기를 맡으며,

붉은빛 노을을 향해 가는 거야.


그런데,

날 안아주던 아이의 슬픔처럼

또 다른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


바람엔 어딘가 슬픔이 섞여 있고,

꽃향기는 지금 이 자리에서 피어나고,

노을은 조용히 등을 떠미는 것 같아.


철없던 아이의 몸짓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누군가의 눈물이 내게 떨어져.


이제 잠시 쉬어야겠어.

느껴지는 기척에도

눈을 뜨지 말고,


그저 나비손을 하고

눈을 감아야겠어.

흐르는 생각을 그냥 바라보면서.


눈 감은 채 흘러간 곳이

바위면 부딪히고,

절벽이면 떨어지고.


그러면 정신이 들지도 몰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면 돼.


춤추던 생각이 멈춰서

나를 돌아봐.

석양이 지는 시간의 풍경.


나 그거 아는데.

붉은 노을을 보며 함께 웃었는데.

또 그러기로 했는데.


그래야지.

잊고 있었네.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기억들을

다시 떠올려 봐야겠어.


이제 내가 들려줄게.


그림동화 기억나무


1. 조용히 떠오른 기억들

다정하고 명랑한 아이가 있었어요.
웬일인지, 그 아이에게 슬픔이 자꾸 찾아왔어요.


아이는 그 이유를 몰랐어요.
웃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시렸고
가끔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무너지는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저 텅 빈 하루들 속에서

어느 날,

조용히 떠오르기 시작한 것들이 있었어요.


울음을 삼켰던 날,
차마 하지 못한 작별,
말끝을 맴돌다 사라졌던 고백.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슬픔이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눈가에 맺힌 눈물이
조르륵 떨어지고 나서야

그제야 따스함에 눈물이 멈췄어요.


언젠가 이렇게 울 때,
누군가 했던 말이 다시 들려왔거든요.

“괜찮아?”


그리고 그 친구와 함께 웃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저마다의 색을 입기 시작했어요.


푸른빛 슬픔,
붉은빛 열정,
노란빛 설렘,
회색빛 그리움,
흰빛 망설임…

기억의 파편들


2. 기억 나무

그 기억들은 조용히 빛을 띠며,

마음 안에서 서로를 향해 다가왔어요.


흩어졌던 조각들이

서로를 알아보듯,

서서히 이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이어진 감정들은

가지가 되고, 잎이 되고,

기억을 따라 자라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어요.


그 나무엔

노란 점처럼 작고 따뜻한 빛들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어요.


그건

처음엔 보이지 않았지만,

기억이 이어지고 나서야 드러난 것들이었어요.


조용히 웃어주던 순간,

말없이 옆에 있어준 시간,

이유 없이 따뜻했던 말 한마디…


잊었다고 생각했던 다정함은

어둠 속에서도

결국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빛은 조용히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어요.

빛을 품은 기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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