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루 꽃나무, 흔들리며 중심을 잡다

윌리엄 골딩과 함께한 삶과 신앙의 고백

by HAN

오늘 우연히 ‘파리대왕’의 저자, 윌리엄 골딩의 이름을 보았다.


오래전 읽었기에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책이 세상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만은 선명하다.


그와 함께 걷듯,

나는 조용히 그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지나온 의심과 절망, 그리고 신을 향한 질문들은

오래전 나의 질문이기도 했다.


그도 처음에는 인간을 믿었다.

문명, 교육, 질서, 그리고 이성.

인간이 스스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합리적 인간성’이 희망을 실현할 도구라고 믿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그는 인간 안에서 통제되지 않는 악의 실체를 보았고,

그 어둠은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안에도 살아 있음을 직면했다.


그때부터 그는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구원은 가능한가?”

“그 구원은 인간 안에서 비롯되는가, 아니면 바깥에서 오는가?”


그리고 말년에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구원은 인간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초월의 개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의 고백이

삶에 대한 ‘지성의 답’이라면,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 그린 한 장의 그림과

그 곁에 흘러나온 짧은 문장은


내가 지나온 삶 속에서,

조용히 길어 올린 작고 단단한 ‘내 삶의 답’이었다

중심을 잡고 선 두 그루의 꽃나무 – 혼란과 평온의 사이에서


그것은 두 그루의 꽃나무다.
마치 내 마음과 신앙이 서로 기대어 중심을 잡듯,
그 꽃나무도 서로를 지탱하며 바람을 견딘다.


꽃의 머리 위에는
수많은 생각과
짐들이 무겁게 얹혀 있다.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서 있지만,
머리 위의 무게는 조금씩 기울어져
흘러내릴 듯 위태롭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누군가 붙잡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붙잡고 있는 것처럼
내 안에서 스스로 중심을 찾아간다.


우리 삶도 그러하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으며
어느새 평안을 찾아간다.


삶은 단단한 무엇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라,
꽃처럼 연약해 보이는 것들로 지탱되는 것 같다.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이자,
약한 것을 강하다고 하시는
신의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무너진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무너짐 안에는
흔들려본 사람만이 아는 강인함이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삶의 순간순간,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결코 내 힘만으로는 아니었다는 것을.


그 살아냄의 여정 위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방식으로
신의 사랑이 늘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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