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
내 글은 보통,
이유도 모른 채 떠오른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번엔
“잣 품은 곶감과 수정과”
였다.
애써 완성해보려 했지만,
이상하게 글이 끝나질 않았다.
그래서 멈춘 김에,
그 제목 안에 담긴 뜻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겨울 햇살과 건조한 바람 속에서
모습을 찾은 곶감.
강한 생강과 계피를
달콤함과 뜨거움으로 다독인 수정과.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간 작은 잣.
잣은 사실 주인공이 아니다.
없어도 되는 존재.
어떤 이에게는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그마한 잣 하나가 더해질 때
그 안엔 정성과 다정함이 담기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작은 품격,
그것 하나가 다르다.
그동안 N행시를 쓰지 못했던 건,
아마도 내가 아직
잣나무에 대해 말할 만큼
내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다.
"잣나무가 품위를 지키느라 눈을 털지 못하는 모습"
작은 웃음, 귀여운 풍경처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글을 쓰다 보면
잣나무를 비웃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다 어느 날,
‘잣의 품격’을 떠올렸다.
잣나무가
근심 같은 눈을 품고 선 모습도
어쩌면 '묵묵한 존엄'이며
'자그마한 품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위선이라 하기엔
너무 가엾었다.
툴툴거리거나 원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쩌면, 나는
잣나무였는지도 모른다.
잣나무 위에 쌓인 눈이 근심 같다.
품위를 지키느라 그러는지,
은빛 외투를 입은 신사처럼 꼼짝 않고 서 있다.
곶감 서리하던 아이들이 뒷걸음질 치며,
감쪽같이 속였다고 좋아하는 순간
과장된 몸짓으로 나뒹구는 아이들.
수북이 쌓인 눈을 재빨리 터는 잣나무.
정적이 깨진 자리에서,
과거를 회상하듯 조용히 웃는다.
살다 보면 우리도 가끔,
그 잣나무처럼 흔들릴 때가 있다.
그 순간은 아픔이지만,
결국은 내가 감당하던 무게가
조금씩, 조용히 덜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느 순간은 아픔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도 모르게,
삐뚤빼뚤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엉성한 선들 사이로
낯선 얼굴 하나가 피어올랐다.
처음 마주한 내 안의 모습.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습지만 정겹다.
나는 그 얼굴과 함께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요즘은,
엉뚱한 상상에 더 크게 웃는다.
허술한 선이지만,
자유의 첫 발자국이라 생각하며
그대로 기록을 남긴다.
종이에 얼굴을 그렸어.
엄청 이상해.
잘 봐야 알 수 있어.
그래도—
눈 두 개, 코 하나, 입술까지 다 있어.
음…
안 되겠어.
이건 너무 평범해!
그래서
선을 쭉쭉—
원을 빙글—
그림을 휘휘~ 흔들었어.
신난다!
얼굴이 춤을 추기 시작했어!
심장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춰!
고개는 까딱까딱
눈썹은 씰룩씰룩
콧바람 휘휘
입술에선 휘파람 삐이—
얘들아, 모여봐!
얼굴이 춤춰!
세상에,
방긋방긋 소리 들려?
이건 낙서가 아니었어.
생긴 건 좀 이상해도—
그건,
개성 충만한 나였어.
나는 이제
삶의 후반부를 살고 싶다.
체면을 지키던 시간들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건 나를 다듬어준 시간이었고,
그 마음 안엔 언제나 사랑이 있었다.
나 나름의 품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편하게 웃는 얼굴로 하루를 맞고 싶다.
선을 조금 삐뚤게 그어도 괜찮고,
춤이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춤을 추는 순간에도,
잣 하나는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나.
나는 이제
작지만 고요한 중심을 지키며,
자유로이 꿈꾸며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멈춰 선 얼굴 하나,
말은 없지만 여전히 나를 닮아 있다.
지금의 나는,
아직 자유로워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