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사랑의 이름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하얀 짜장과 하얀 짬뽕을 처음 먹었습니다.
익숙한 맛은 아니었고,
솔직히 제 입엔 잘 맞지 않았습니다.
다음엔 그냥,
검은 짜장과 붉은 짬뽕을 먹어야겠습니다.
하얀 음식을 먹고, 숭고한 별 카페에서 검은 커피를 마셨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이곳은, 당신이 잘 아시는 곳입니다.
비싸지 않은 커피 한 잔이
아프리카의 작은 마을에 티끌만큼이라도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그림 속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예쁜 얼굴선과 커다란 금빛 귀걸이,
화려한 색감을 두르고 있는 여인입니다.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입술은 꼭 다물지 않아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춘 듯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으려 손을 뻗었는데,
여인의 목에 닿았습니다.
순간,
내가 그녀의 목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손끝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억지로 웃지도, 감정을 숨기지도 않은
그냥, 그런 얼굴이
아름답고 슬펐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우리의 오래된 마음을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몇몇 친구들은 바쁜 일정으로 먼저 자리를 떴고,
남은 우리는 잠시 공원을 걸었습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졸업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방해가 될까 봐 조용히 걸음을 돌렸습니다.
예쁜 아이들이었기에,
기꺼이 그 자리를 내주고 싶었습니다.
그 사이,
우리 곁에 새로운 친구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더위마저도, 그날은 친구 같았습니다.
월미바다열차를 탔습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이 조용히 얼굴을 스칩니다.
더위가 묻습니다.
“행복하니?”
나는 바람 쪽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열차는 월미도를 돌고 있었습니다.
설명 멘트가 흘러나왔지만,
도란도란한 이야기로 채운 귀에는
그 말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꽃을 둘러싼 돌 위에 앉아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가 자리를 뜨자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차례로 앉아 사진을 찍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한가 봅니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나이에는
누구도 똑똑하지 않습니다.
흘리지 않아도 될 땀을 흘리고,
돌지 않아도 될 길을 걷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걸음 안에,
함께 나눈 마음이 담겨 있으니까요.
우리는 아이처럼 웃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을
우리는 종종 절망이라 부릅니다.
아마도 지금,
우리는 그 어딘가에 서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마음의 선이 곧아
뒤틀리지 않아서.
들은 말에 불필요한 생각을 덧붙이지 않고,
억측으로 주위를 괴롭게 하지 않아서.
걸음이 빠르지 않아
주위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천천히 가는 만큼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서.
그리고,
웃음이 많아서
참 다행입니다.
너무 웃다 보면
눈물이 나는 것도—
그건 아마,
우리 안에 심어두신 사랑의 한 방식이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눈물을 덜어냅니다.
글을 쓰다 보면
이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멈칫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쓸 글이 남아 있다는 건
어딘가에서 여전히
사랑이 흐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래서 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