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그린 줄 알았던 날들이 하나의 그림이 되기까지
못 그린 줄 알았다.
그래서 버리려 했다.
그런데, 뒷면에 풍경이 남아 있었다.
학창 시절, 사자성어나 속담을 배우며
그 뜻과 의미는 외우려 애썼지만,
정작 그걸 왜 배우는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 나이가 돼서야 새삼 깨닫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혜라 부르는 말들은
결국 보편적인 삶의 방식과 사고에서 비롯된다.
살다 보니,
이해되지 않았던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고
당황스러웠던 상황도 어느 순간 받아들여진다.
단순히 '성장'이라 하기엔
너무 익숙한 교훈들이다.
사람들은 흔히
‘나는 좀 다르다’고 믿지만,
결국 삶의 어느 지점에선
비슷한 질문과 굴곡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누구는 더 깊이 상처 입고,
누구는 더 오래 멈추며,
누구는 자기 삶보다 남을 먼저 품는다.
그래서 나는
삶의 모양은 닮았을지 몰라도
그 마음만큼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진작, 좀 더 진지하게
‘배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면—
삶의 지혜를 조금 더 일찍 품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지혜를 책이 아니라,
수다와 이야기의 방식으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글은 너무 빨리 우리를 떠나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얻은 지혜 하나를 나눈다.
운전 중, 과속카메라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일어나서 기뻤던 일보다
일어나지 않아서 감사해야 할 일들이
어쩌면 훨씬 많았을지도.
무고한 하루를 보내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을 그릴지 정하지도 않고
손 가는 대로 색을 칠했다.
형체도 없이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너무 못 그린 그림이 나왔다.
그림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책상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 그림의 뒷면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엔,
희미하게 비친 색과 형태가 남아 있었다.
번져 있고, 지워졌고, 울퉁불퉁하지만
강조되었던 부분의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그냥 버릴 수 없어서
조각처럼 나눠진 형태들을 분리해
여러 배경 위에 올려보았다.
그러다
해변 배경 위에 그 조각들을 올렸을 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 것 같던 형상들이
이제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정말 중요한 건
늘 눈에 보이는 정면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뒷면에
조용히 남겨진 흔적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못 그린 줄 알았던 날들,
그냥 흘러간 줄 알았던 순간들이
나중에야
하나의 풍경이 되어주곤 하니까.
아직은,
판단하기엔 이른 시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