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층높이의 옥상에서 아이가 혼자 논다. 옥상에는 뚜껑 덮인 항아리 하나와 양쪽 모서리에 세운 나무 기둥을 연결한 빨랫줄, 구석에 벽돌 하나가 있다.
아이는 자신을 항아리를 지키는 전사라고 상상한다. 항아리 안에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희귀 금속이 들어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이가 지키는 건 항아리 안에 있는 반지 크기의 희귀 금속이다.
그 금속은 빛을 받으면 효력을 잃기 때문에 뚜껑을 잘 닫고 그 틈을 잘 막아야 한다. 아이는 어떻게 빛을 차단할지 고민한다.
적들은 어떻게든 빛을 사용해서 그 금속의 효력을 잃게 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혹시라도 아이가 없는 틈을 타 항아리를 깨뜨리거나 봉한 틈을 열까 봐 아이는 항상 불안하다.
전사가 한 사람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아니면 기묘한 계략이?
항아리를 혼자 지킨다는 것은 무리다. 항아리가 너무 커서 금방 표적이 된다. 항아리를 깨고 그 안의 금속이 빛을 받지 않도록 다른 곳에 숨겨야 한다. 가만히 고민하던 아이가 빨랫줄을 연결하기 위해 세운 나무기둥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머리가 깨지겠다. 기발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가 끊임없이 머리를 굴린다.
빨랫줄 한쪽을 풀어 벽돌을 매서 항아리를 깨뜨릴까? 벽돌을 최대한 뒤쪽으로 당겨 항아리로 가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웃 옷을 벗고 있다가 항아리를 향해 뛰어가 깨지는 항아리에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옷과 몸으로 막는다. 몸이 피범벅이 될 거다.
기발하지 않다. 몸만 피투성이가 되고 실패로 끝날게 뻔하다.
아이는 상상을 포기한다.
상상임에도 너무 지진,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한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헐. 이건 의도한 게 아니다. 헛웃음이 난다. 그래. 지구는 그냥 마징가 Z나 독수리 5형제가 지키는 게 낫겠다.
금방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옥상 계단을 내려오던 아이가 걸음을 멈춘다.
빗방울, 칠흑 같은 어두움?
비 오는 날 한밤중, 칠흑 같은 어두움 속이라면 가능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좀 전의 상상에 미련이 남은 아이의 머리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아니다. 반대로 가정하면? 빛이 있어야만 효력이 유지되는 걸로?
이내 머리의 먼지를 털듯 머리를 좌우로 몇 번 흔든 후 아이는 남은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의 이름은 현우다(賢友). 어질 현, 벗 우.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은 친구.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부모님은 현우를 사랑하지만 장사를 하시느라 집을 비우시는 시간이 많다. 형제도, 친구도 없는 현우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상상 속에서 현우는 진지하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고, 그걸 잘 해내고 싶다. 현우를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다. 문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상상에 너무 진을 뺀다는 거다. 옥상에서 내려오고 나면 진짜 전투를 하고 온 사람처럼 손하나 까딱하기가 싫다.
남은 힘을 다 쏟아야 하는 사람처럼, 천장을 보며 다시 이런 상상을 한다.
항아리 뚜껑이 보이는 전투선이고, 그 뚜껑은 보이지 않게 앞면을 제외한 좌, 우, 위, 아래, 뒷면은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적은 그 사실을 모른 채 계략을 세워 뒤를 공격할 거고 현우는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앞면만 잘 집중 방어하면서 가끔은 무기로 공격을 하면 된다. 잠깐 방심하면 살짝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앞을 보는 한 절대 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