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가 쓰는 한남동에 대한 짧은 픽션 - 한남동 이야기
사람 많은 곳을 내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 곳에 있으면 불안하달까, 초조해진달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데 그래요. 실은 그래서 그런 걸지도 몰라요. 누가 나를 쳐다보는 걸 몹시 부담스러워 합니다. 대체로 무난하거나 익숙한 것을 선호합니다. 신발이라도 새로 신고 외출하는 날에는 종일 불편해합니다. 살 때는 몰라도 나중에 보면 옷장 안에 옷들이 죄다 회색이나 브라운 계통이라거나, 오늘 먹은 메뉴를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고 그렇거든요. 입맛이 딱히 까다롭다기보다는 무얼 새로 고르는 걸 잘 못해요. 그런 탓에 홍대나 신촌만 나가도 내가 너무 평범해서 도리어 사람들이 쳐다보지는 않을까, 남들하고 내가 너무 다른 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나는 좀 그래요, 주눅이 잘 드는 타입입니다.
게다가 심각한 길치거든요. 한번은 이런 적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이사를 했는데 오후 느지막이 산책을 나갔다가 길을 헤맸습니다. 저녁에 먹은 중화요리가 잘 소화되지 않은 탓에 잠깐 걷다가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만, 그사이 주변이 어둑해져버렸던 것입니다. 낮에 보던 풍경이 저녁에는 또 달라서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는 것처럼 생소했습니다. 골목이 많아서 어딜 가도 비슷해 보이고 분명, 여기가 맞을 텐데 싶었던 건물들도 도무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는 진짜 막막했습니다. 방향도 모르고 한참을 걸었거든요. 가벼운 복장이라 무엇 하나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는데 너무 멀리 와버린 거면 어쩌나, 돌아갈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때마침 그릇을 찾으러 온 그 중국집 배달원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디 마땅히 물어볼 데도 없었을 겁니다. 달리는 오토바이를 불러 세우며 다급하게 내가 외쳤습니다.
“이봐요, 아까 우리집에 배달오지 않았어요? 짜장면 하나 시켰다고 뭐라 궁시렁대고 그랬잖아요? 기억 안 나요? 맞아요, 그게 나예요. 내가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두 개 시킬게요. 그런데 말입니다, 거기가 어디예요? 아까 배달한 우리집이 어디예요?”
배달원이 가리킨 방향 쪽으로 얼마 걷지 않아 우리집이 보였습니다. 고작 모퉁이를 하나 돌았을 뿐인데 멀쩡히 거기 있더라고요. 이후로도 나는 짜장면을 즐겨 먹습니다만, 그때 그 집에서 다시 배달시킨 적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 배달원을 마주치기가 민망하잖아요. 다만 식후에 속이 더부룩해도 그냥 참는 편입니다. 위장이 좋지 않아 밀가루가 잘 맞지 않는데도 간단하게 한끼 때우기에는 짜장면만한 게 없거든요.
보내주신 청탁서는 잘 받았습니다. 내용을 꼼꼼히 읽어봤는데 조금 걱정이 되더라고요. 한남동이라면 내가 사는 곳에서 아주 멀지는 않지만, 아직 가보지는 못했거든요. 거기에 대해 무얼 쓰려면 아무튼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거잖아요.
사전에 블로그에서 가볼 만한 몇 곳을 정해두고, 구글 지도에서 경로를 꼼꼼히 살폈습니다. 주로 맛집 관련 내용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나도 그런 것을 먹어보자, 그래도 너무 모르는 것보다는 남들이 주로 먹는 걸 시켜보자, 다짐했습니다. 집 앞에서 한남동까지 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내친김에 주변을 좀 돌아볼 생각이었습니다.
맞아요, 조금은 무리였다고 나도 생각합니다. 괜한 객기를 부렸다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버스는 제대로 탄 게 맞거든요. 다만 내려야 할 곳보다 먼저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한 번에 우르르 내리길래 불안한 마음에 나도 따라 내렸거든요. 노선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아 보여서 걸어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안합니다만 지금 어디 계세요? 가까운 곳이라면 나를 좀 찾으러 올 수 있나요?
아, 근처라고요?
함께 동행해주겠다고요?
여기요?
여기서 뭐가 보이냐고요?
그러니까…… 아, 방금 엄청 큰 고양이가 지나갔어요. 검은색인 것 같기도 하고 진한 갈색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엄청 커서 눈에 잘 띄는데…… 네? 그거 말고요? 아니라면…… 도로가 넓어요. 자동차가 아주 많고 신호등이랑 횡단보도도 있어요. 건물요? 큰 건물? 저기 편의점이 있어요. 세븐 일레븐. 미안한데, 내가 그냥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될까요? 뭐요? 택시요? 차라리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려주겠다고요? 아, 고맙습니다. 자꾸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전에 하나만 더 물어도 될까요? 그런데 택시는 어디서 타야 하나요? 도로 건너편입니까, 아닙니까? 그보다 우선은 도대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겁니까?
1983년 전남 순천 출생. 2014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 한 번쯤 한남동을 가본 것 같긴 한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태원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