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보자고 하자 한별은 극도로 싫은 내색을 하며 멀리 도망가 버렸다.
누나가 한별을 엄하게 불러다 앉혔다.
누나는 그 집의 군기반장이었고 한별이도 누나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그러나 누나가 야단치듯한 목소리로 지시를 하면 아이는 더욱 산만해졌다.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몸을 흔들었고 쉴새없이 소리를 내지르거나 중얼거렸다.
누나가 무서워서 내 옆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정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누나와 한공간에 있으면 늘 그런 식이어서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갔다.
아이가 한결 편안해지기는 했지만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건 매한가지였다.
방안을 돌아다니며 혼자 소리지르며 놀았다. 살짝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
"5분 동안 실컷 놀아. 5분만 기다려줄게."
나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5분 됐다. 이제 이리로 오세요."
그러면 아이는 순순히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어떤 때는 5분도 되기 전에 다가와서 앉았다.
책은 아이에게 가장 재미없는 물건이었다.
초단위로 돌아가는 영상물에 익숙해진 아이는 책 한 페이지를 건너는 것이 너무나 지루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책을 읽는 일이 아이에게는 스토리를 따라간다기보다 '호랑이' 혹은 '나비' 같은 낱말 하나에 겨우 반응하는 일이었다.
먼저 책 선정을 다시 해야 했다.
집에서 가져갔던 책이나 한별이 집에 있던 책들 중에는 아이의 수준에 맞거나 흥미를 끌 만한 것이 없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