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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난민들을 보며

by 유연한프로젝트

때는 바야흐로 2004년.


한-칠레 FTA, 대통령 탄핵 소추안 상정 등 격변의 2004년 나는 국회인턴이었다.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시작된 나의 첫 사회생활이었다. 정치외교학 전공자로 국회에서 일해보는 것은 어쩌면 국제기구 무대로 나가지 못한 자의 후순위 선망이 담긴 일이었고, 현실 정치를 전혀 모르던 대학교 4학년 졸업생의 허상이 가득한 곳이었을지 모른다. 새로운 21세기가 시작되던 시기였고, 우리나라는 2002 한일월드컵까지 치른 '선진 국가'였지만 아직 국회는 아직 의원회관 사무실 안에서는 호랑이굴처럼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복도 한구석에 가림막만 세워 놓은 흡연구역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내가 일하던 당 정책위원회 사무실에서는 나를 포함한 3명의 인턴을 뽑아 놓고도 무슨 일을 시켜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렇게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급격하게 변하고 있던 세상과는 더욱 동떨어진 곳에서 석사과정 공부와 병행하다 보니 나는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나 철이 없던 나이였던 것인지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사건의 현장에서 목도하면서도 심각한 역사적 비판의식을 갖기보다 나의 출퇴근 길을 막아선 몇 겹씩 둘러싸인 전경버스가 더 불편했다. 국회 정문 앞에 서 있던 탄핵 저지 시위를 하던 생각있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분당에서 아침 6시 50분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출근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의원회관 직원식당에서 아침밥을 먹는 것이 어쩌면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을지 모른다.


목숨을 걸고 한국행을 택한 아프간 사람들을 보며, 2004년 그 불안정한 시기에 그래도 나는 멀쩡한 ‘국가’가 있어서 나의 아침밥과 출퇴근길 걱정만 해도 되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PRU20210817066201009_P4.jpeg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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