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일 2025
하얀 모자 하얀 가운 하얀 장갑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너도 나도 같은 색에
너도 나도 같은 작업
하루하루 상황이 다르고
그때그때 마음은 달라도
매일매일 똑같은 작업을
오늘도 일정한 속도로
한참을 때리는 바람에 우두커니
나를 다 털어내고서야 반겨주는
깨끗이 정돈된 나의 작업장
딱 알맞게 주어진 하루라는 세계
평범한 게 행복이라던 당신들의 믿음에
나는 늘 성실했고
우린 늘 분주했지
가동을 멈춘 적 없는 날에도
불량이 적은 우리의 가슴엔 늘 빨간 경고등이 깜빡이고
라인 끝 수북이 쌓인 양품들로 변한
대를 이은 성실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아주 조금이라도 스치면
모조리 쓰러지는 그동안의 분주
온종일 바람에 깎여도
다시 자라나는 믿음이 있다
삐걱대던 기계는 오늘도 고장 나지 않고
결국 너와 내가 먼저
반복되어 부서지는 영원한 구조 앞에서
치워지는 라커룸을 상상해 본다
우리가 지켜오던 세계의 마지막 공정
내일도 일정한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