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시 치르기Ⅰ
우리 가족이 6년 동안 살았던 버지니아 맥클린은 소위 말하는 8학군이었다. 아이들의 학교에는 기자나 공무원으로 파견 나온 한국인 부모, CIA 같은 쟁쟁한 국가 기관에 다니는 미국인 학부모가 흔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 아이들은 명문대에 가려는 포부를 품었다. 부모들은 한국의 치맛바람, 바짓바람에 못지않은 바람을 일으키며 아이들을 키웠다. 상대 평가가 아닌데도 서로 정보를 나누지 않고 아이비리그대학에 가는 모든 방법을 찾았다. 입학 사정관의 눈에 드는 에세이를 쓰려면 부모 중 누군가 중병에 걸려 살아나거나 죽거나 해야 한다는 씁쓸한 농담도 있었다.
학기 초에 열리는 Parent night에는 학부모가 학교를 방문했다. 내 아이가 한 학기 동안 들을 과목의 교실로 가서 교사들을 만나고, 과목별 수업 내용이나 기대되는 과제를 듣는 행사다. 똑똑한 부모들은 선생에게 촌철살인의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영어를 알아들으려고 애를 썼다. 미국에서 한 번도 학교에 다녀보지 않아서 애들 학교에 관한 일이 모두 낯설고 힘들었다. 학교는 어디나 비슷하고, 미국 학교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다 받아줄 거라는 기대는 환상이었음을 알았다. 미국 공교육은 이 나라의 다른 시스템처럼 원칙에 따라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정확하게 돌아갔다.
미국에서 교사는 고액 연봉자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권위를 확실히 지켜준다. 학생이 아무리 에세이를 잘 써도 교사가 보기에 평소 그 아이의 실력과 맞지 않아 대필 혹은 카피의 의혹이 있으면 F 학점을 줄 수 있다. 항의해도 소용없다. 교사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수업 시간에 반듯하게 앉아있을 필요는 없지만, 잠을 자거나 핸드폰을 볼 수는 없다. 학생이 수업 태도가 불량하면 학부모를 재깍 부른다. 물론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를 것이다. 미국의 학교도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 세금을 많이 내는 지역의 학교는 비교적 시설이나 교사의 수준이 높다. 큰아이가 수업 시간에 잔다고 몇 번이나 나를 호출한 선생이 있었다. 나이 든 백인 여자 선생님을 아이는 마귀할멈 같다고 싫어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아들은 그 선생님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며 찾아갔다. 선생님은 “세상에, 프레드릭이 나를 찾아오다니 감격스럽구나”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미국 학교 생활을 힘들어하며 몇 년을 헤매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큰아이는 미술을 하겠다고 했다. 아이가 잘하고 관심을 가진 과목이 유일하게 미술이었다. 선생님이 좋다는 미술 학원을 소개받아 아이를 보냈다. 미술 학원의 한국인 선생님은 아들을 이해해 주고 격려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그림을 망쳐도 된다고 하고 절대 고쳐주지 않았다. 선생님 자신도 어려운 청소년기를 겪었다고 했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왕복 두 시간 거리를 운전해야 했다. 힘들어도 아이가 그려오는 그림을 보고 나는 위안을 받았다. 그림으로 자신을 분출하면서 공부에도 점차 몰두했다. 어느 날, 아들이 영어 과제로 쓴 짧은 소설에 나는 감탄했다. 처음으로 A를 받아 아이는 자신감을 얻었다.
‘미국, 캐나다 등지의 미술대학 입학 사정관들이 한곳에 모여, 예비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직접 보고 평가하고 피드백을 해주는 행사’인 National portpolio day가 열린다고 미술 선생님이 알려주었다. 2년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서 들고 아들과 나는 행사가 열리는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MICA)에 갔다. 학생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대학이 차려놓은 부스에 들어가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었다. 학교 성적이나 SAT보다는 오로지 그림만 심사했다. 그리는 기술 보다는 얼마나 괜찮은 생각을 표현하느냐를 더 평가한다고 했다. 미술 선생님은 아들이 외곽에 있는 대학보다 도심에 있는 대학에 더 잘 적응할 것이라 조언했다. 몇 대학에서 아들이 감시(surveillance)에 관해 그린 그림 모음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아들이 무엇인가 이루어 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GPA와 SAT 성적이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포트폴리오만 보고 미대에서 합격 통지가 왔다. 한 학교는 장학금까지 주겠다고 했다. 아이가 원하는 도심에 있는 대학에서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또 눈물이 나게 고마웠다.
영어로 졸업식은 시작이라는 뜻인 ‘commencement’이다. 프랑스어로도 이 단어는 시작을 의미한다. 졸업이라는 한자에는 ‘마치다‘라는 卒이 들어있어 처음에 들었을 때 이상했다. 동양과 서양의 관점 차이일까. 미국 사람들은 졸업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본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이의 commencement식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진실로 감동적인 시작이었다.
아이는 아이비리그대학은 아니지만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술대학에서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 졸업할 때는 총장상도 받았다. 나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잘 마치고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던 엄마에서 대학 졸업식에서는 장학생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절망과 감동의 눈물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