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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에피파니 성당

에피파니 한인 공동체 20주년을 축하하

by Claireyoonlee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으며 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귀한 것이 나타난다’는 그리이스어 ‘에피파니'.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차와 마들렌을 먹으면서 프랑스 중상류 집안에서 겪은 어린 시절을 줄줄이 회상하듯이 저는 이 성스러운 단어를 들을 때마다 워싱턴 디씨의 오울드 타운에 있는 ’조지타운 에피파니‘ 성당에서의 추억을 떠올립니다.

한국에서 냉담 신자였다가 미국에 와서 꿈에서 성모님을 보고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친구와 같이 갔지만 처음 보는 교우들은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들과 그 후로 6년 동안 그리고 그 후로도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진한 사이가 될 줄은 몰랐지요. 주일 미사를 드린 후, 지하에 있는 친교실에서 나누었던 이야기의 향기는 성당 안에 아직도 배어있겠지요? 사랑이나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 분노, 아쉬움, 질투까지 담긴 폭풍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품 안에서 잠잠해졌습니다. 사춘기 두 아들을 키우며 애면글면하던 저는 하느님과 신부님, 교우들 덕분에 지혜를 얻고 위로받았습니다.

신부님과의 성경 공부 시간에 이어서 가진 점심 식사가 생각납니다. 아기자기한 사제관에서 성경을 읽고 간단하면서도 날카로운 신부님 설명을 듣고 나면 신부님이 잘 가는 조지 타운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국적인 음식을 약간의 반주와 즐기면서 신부님의 썰렁 농담에 많이 웃었습니다. 신부님은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을 말해도 다 지나간다는 듯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듯이 가볍게 웃음거리를 찾았습니다. 신부님이 하라는 대로 잘 먹고, 잘 웃고 나면 고민이 무엇인지 잊었습니다. 그때는 신부님이 우리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답도 없는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잊게 주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집안 살림도 잘 못하는데 성당 살림을 하는 성모회 일을 맡아 했습니다. 회장님의 주도로 하는 성당의 행사 준비는 시간과 품이 드는 일이었지만, 함께 하면서 즐거웠고 번듯한 상이 차려진 모습을 볼 때마다 흐뭇했습니다. 성모의 날에 성모님 머리에 씌워드릴 화관을 만들고, 새로운 신자를 위해 김밥을 만들어 대접하고, 크리스마스 파티 음식을 만들거나 주문해 가져오는 등의 맡은 일을 기껍게 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풍성한 상을 차릴까 고심하고 노력했습니다.

에피파니 공동체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들의 신부님이었던 이바오로 신부님이 다른 성당으로 인사 발령이 나자 ’신부님을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니냐, 한국어 미사는 없어진다’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평화로웠던 공동체는 술렁였습니다. 공동체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자매님들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 형제처럼 한국어 미사가 사라지지 않고 공동체를 지킬 방법을 진지하게 의논했습니다. 수녀원을 찾아가 수녀님과 합의하여 영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쓰면서 미사를 드리자고 결정했습니다. 한국어를 못하는 새로운 신부님과 한국어가 편한 신자들을 위한 고육책이었죠.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는 9시 한국어 미사를 드릴 수 있고, 미사 후 친교를 하고, 공동체가 흩어지지 않았음을 안도하고 감사드렸습니다.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레지오 마리에도 꺼질듯한 불씨처럼 존폐의 기로였지요. 단원이 없어 사라질 뻔했는데 몇 명의 자매님들이 합류하였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어리지만 정신세계는 나보다 성숙한 두 동생과 원 멤버 단장님 이렇게 최소 인원 네 명으로 성당의 쪽방에서 레지오 마리에는 간신히 이어졌습니다. 난방이 잘되지 않아 작은 난로를 켜고 옷을 잔뜩 껴입고도 성모님께 봉헌하는 시간이 따뜻하고 평화로웠습니다. 지금도 에피파니 성당에서는 매주 레지오 마리에의 쁘레시디움이 열리고 있겠지요?

아 그리고도 얼마나 추억이 많은지 손꼽을 수가 없습니다. 황송하게도 성혈 분배자로 임명되어 미사를 드리던 시간, 성탄 자정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맞이하던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는 인적없는 M스트릿, 구역별 장기 자랑에서 상을 타겠다고 못하는 노래와 춤 연습하면서 파안대소하던 누군가의 집. 무엇보다도 미사와 기도를 함께 드리며 희로애락을 나누던 형제자매의 그리운 얼굴과 그들과의 이야기가 가장 애틋하게 생각납니다.

에피파니 성당 덕분에 나의 6년 동안의 타향살이는 윤택하고 풍요로웠습니다. 한인 공동체가 이 성당에서 시작한 지 올해 20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도 그 긴 세월 속에서 한 점이 되어 살아갔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에피파니 공동체의 20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더욱 정답고 화목한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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