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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두고 오는 마음

48산 신수도 (2022년 2월)

by Claireyoonlee

예상보다 일찍 새벽 4시에 사천 와룡산에 도착했다. 대장은 어둡고 험한 여정이니 올라가고 싶지 않다면 버스에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다. 1년 전 이맘때 올라갔던 산이고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너덜길이 많은 산임을 알기에 쉬겠다고 하고 몇 명과 함께 남았다. 하지만 4시간 동안 버스에 꼼짝없이 갇혀 지루하고 답답했다. 밖에는 추위를 피할 적당한 장소가 없었고, 자정부터 운전한 기사의 쪽잠을 방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시는 혼자 남아 기다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언니 오빠가 하교하기를 기다리는 동생처럼 목을 빼고 친구들을 기다렸다. 동이 트기 시작하자 칠흑 같은 새벽을 뚫고 올라갔던 등산객들은 여명을 보면서 내려왔다.

와룡산(臥龍山)에 누워있는 용이 머리를 내민 모양인 신수도로 가는 배는 삼천포항에서 떠난다. 물살을 헤치며 천천히 십여 분만 가면 섬이다. 신수도는 작고, 낮고, 고요했다. 선착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을에서도 주민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 흔한 편의점이나 식당, 펜션도 보이지 않았다. 학교는 번듯한데 단 두 명의 학생이 다닌다고 했다. 넓은 운동장은 적막했다. 온통 초록색 페인트를 칠한 바위 언덕 위에 작은 교회가 항구를 끼고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신수교회’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오면 꽉 찰 것 같았다. 공들여 유지하는 깨끗한 배가 꽤 많이 정박해 있는 항구의 물이 잔잔하고 속이 들여다보이게 맑았다.


신수도는 주위에 수우도, 두미도, 욕지도 같은 남해의 섬과 산방산, 미륵산, 지리산 같은 산, 그리고 잔잔한 바위가 52개라고 ‘쉰두섬’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봉우리가 둘러싼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둘레길을 가다가 100m도 되지 않는 섬 산 대왕기산(93m)에 올라갔다. 우리는 모처럼 높은 산을 간다고 역설적으로 말하며 웃었다. 낮은 산은 소나무와 동백나무, 잎이 몽땅 떨어진 활엽수로 빽빽했다. 아침부터 차가운 공기를 맞고 다녀서 따뜻한 햇볕이 그리운 우리는 양지바른 곳을 찾다가 몽돌해변에 앉았다. 태양이 덥힌 돌이 따뜻했다. 멀리 삼천포 화력발전소에서 수증기가 쉬지 않고 뿜어나왔다. 추위로 웅크렸던 우리는 태양의 기운을 받고 강아지처럼 좋아했다.


몽돌해변은 피크닉하기에 아주 적당했다. 우리는 라면을 끓이려고 버너를 켰다. 바닷바람 한 스푼이 들어가서일까. 친구가 기막히게 맛있는 라면을 끓였다. 세심한 누군가 라면에 넣을 파와 떡까지 썰어 챙겨왔다. 라면에 디저트, 커피까지 먹고 나니 몽돌해변이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에는 모가 하나도 나지 않은 동글동글한 자갈이 사이좋게 깔려 있었다. 바닷물이 몽돌 사이로 스며 들어오면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났다. 투명하게 맑은 물속에 웃는 아기 얼굴 같은 돌이 모여있었다. 이 많은 돌이 한 치의 모도 나지 않도록 물이 쓰다듬은 세월이 얼마나 오래였을까. 물가에 앉아 돌과 바다가 어울려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 몇천 억겁의 시간 중 찰나의 순간을 즐겼다.


해변에는 바닷물에 하얗게 변색해서 금속처럼 빛나는 나무둥치가 자리 잡고 있다. 들어보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자라다가 쓰러진 나무가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에 떠다니다가 어떻게 이 해변에 와서 자기 집처럼 자리를 잡았는지 신기했다. 인어가 와서 앉아 있을 법한 벤치 모양이라 서로에게 인어 자세를 취해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인어처럼 나무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정말 인어가 되어 바다를 집처럼 헤엄쳐 다니는 상상을 했다.


삼천포항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보니 작은 섬이 더 작아졌다. 섬을 떠날 때마다 우는 아이를 두고 오는 기분이 든다. 섬이 우는 건지 내가 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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