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

53산 비금도 (2022년 5월)

by Claireyoonlee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 또한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나의 여행기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끌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여행이 싫다고 하면서도 인류학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브라질로 떠났다. 오지를 탐험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 했던 그는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고, 실존주의의 한계를 넘어 구조주의 이론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위대한 인류학자의 불평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불편한 잠자리에서 선잠을 잘 때마다, 돌과 진흙으로 덮인 산길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현지 주민의 푸대접을 받을 때마다 나는 ‘왜 집을 떠나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며 투덜거린다. 하지만 돌아와서 여행기를 쓸 때쯤이면 다시 떠나고 싶다. 레비스트로스도 그렇지 않았을까.


“비 내리는 호남선의 완행열차가 철도를 달려가다가 멈추어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에 놓여있는 목포”(목포는 항구다-한승원)를 지나 압해도에서 암태도까지는 천사(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암태도의 오래된 등대를 보고 암태 남강항에서 비금도로 가는 배를 탔다. 배는 서서히 밝아오는 바다를 한 시간쯤 달려 섬에 도착했다.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이제는 다도해 여행이 훨씬 쉬워졌다. 다리가 놓여 육지가 된 섬에 사는 사람들이 더 행복할지 아닐지 모르지만, 섬으로의 여행은 빠르고 편해졌다.

비금도 가산항에 대기하고 있는 작은 버스를 타고 들머리로 향했다. 기사는 이십여 분 가는 동안 섬에 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었다. 느릿하고 구수한 남도 사투리가 듣기 좋았다. 차창으로 염전에서 연회색 소금을 긁어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 섬에서는 소금과 섬초가 많은 돈을 벌어다 준다고 했다. 하지만 염전에서 소금을 얻어내고, 염분이 있는 땅에서 자라기 위해 단맛을 내는 섬초를 재배하는 일은 골병이 들 정도로 힘든 일이다. 오죽하면 농사를 짓다가 골병이 든다고 섬초를 ‘골뱅초’라고 한다고 했다. 섬사람들은 그렇게 번 돈을 도시의 자식에게 혹은 병원에 갖다 바친다고 기사가 끌탕을 치며 말했다. 언젠가 섬초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일손을 놓으면 천일염이 배인 시금치를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멀고 먼 이 섬에서 알파고를 이긴 이세돌 바둑기사가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지금도 섬초를 재배하며 섬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기사는 그 집 앞에 있는 바위산이 내뿜는 비범한 기운 때문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버스는 우리를 명사십리에 잠깐 내려주었다. 물이 빠진 해변의 단단한 모래 위로 차들이 달렸다. 가물가물하게 멀고 긴 모래사장이 방금 나온 태양의 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외로웠던 겨울 해변이 뭍에서 온 사람들로 잠시 흔들렸지만, 고고한 자태는 잃지 않았다.

기암괴석이 이어진 능선을 따라가면서 섬을 내려다보는 그림산(226km)과 선왕산(255km)은 산길이 단정하게 나 있어 등반이 어렵지 않았다. 산을 오르면서 염전과 밭, 그리고 뭉텅뭉텅 흩어져 있는 섬이 품은 기쁘고 슬픈 이야기들이 가슴 뭉클하게 밀려왔다. 섬은 산에 의지하여 안간힘을 다하여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높지 않은 봉우리에서도 사방이 다 트여 가슴이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며 만사를 잊었다.

산에서 내려오니 하트모양의 백사장(하누넘해변)이 나타났다. 모래의 고운 입자가 손가락사이로 스르르 흘러내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무박 여행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친구가 모래 위에 자란 산발한 풀 사이에 누워 보라고 했다. 벌렁 누웠더니 옥같이 푸른 하늘이 먼 길을 잘 왔다고 환하게 웃었다. 여행을 싫어했던 프랑스의 인류학자도 잘 왔다고 느낀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암태도-> 암태 남강항->비금도 가산항->비금도 명사십리->선왕산 입구->그림산, 선왕산 산행->하누넘해변->도초항

도초도3.jpg
도초도2.jpg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