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산 펀치볼 둘레길(2022년 4월)
72년 전 6.25 전쟁이 일어났다. 이 땅에 수많은 생명이 스러졌지만, 정신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피비린내 나는 과거는 희미해졌다. 아니 우리는 애써 잊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전쟁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펀치볼 둘레길’이다. 총 4개 구간(평화의 숲 길, 오유밭 길, 만대 벌판 길, 먼 멧재 길) 중 오유밭 길(14.6km)을 다녀왔다. 둘레길이지만, 고도가 400~500m라 ‘내 맘대로 100산’에 포함했다.
한국전쟁 중 이곳의 전투는 격렬했다. 양구군에서 일어난 9번의 큰 전투 중 4번이 이 분지에서 일어났다. 고지를 점령하면 그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땅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적군 1만여 명, 아군 2,000여 명이 전사했다. 결국 국군이 북쪽의 가칠봉을 차지함으로써 해안면은 남한 땅이 되었고 38선이 휴전선이 되었다. 미군은 분지가 화채 그릇 같다고 ‘펀치볼 전투’라 보고했다. 이제 우리는 그 전투지를 ‘펀치볼 둘레길’(72.2km)이라고 부른다. 국제지뢰금지운동(ICBL) 등은 ‘남북 DMZ에만 200만 개 이상의 지뢰가 묻혀 있다’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이 길을 걸으려면 반드시 허락받고, 해설사가 인도하는 길로만 걸어야 한다. (코스별로 탐방예약을 해야 하는데 1일 2회, 200명 내외로 운영된다. 출발 시간은 오전 9시와 오후 1시다. 탐방 중 숲길체험지도사로부터 코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밭을 통과하는 임도가 반, 산길이 반 정도 된다.
양구의 분지 마을 해안면은 ‘지뢰(mine)’라고 쓰여있는 철책이 있는 것 말고는 보통 농가와 다름이 없다. 농사가 한창 시작인 밭에서는 천연 비료 냄새가 났다. 일렬 정대로 심어있는 인삼밭, 감자밭, 사과밭에는 기계식 농업이라 사람이 보이지 않고 빨간 트랙터만 왔다 갔다 했다. 요즘 농사는 거의 외국인 노동자가 짓는다고 해설사가 말했다. 규모가 엄청나게 크지만, 가끔 농작물이 얼어 죽거나 하면 그 해 농사는 완전 적자가 된다고 했다. 검정 비닐을 뚫고 양파 싹이 올라왔고, 사과나무에 꽃봉오리가 앙증맞게 맺혔다.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한 폭의 임도가 밭 사이로 나 있었다. 우리는 해설사를 따라 임도를 걷다가 가끔 소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아직 잎을 내지 못한 나무가 많아서인지, 지뢰가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전쟁의 잔재가 남아있어 그런지 봄을 맞이하는 북쪽의 산은 스산했다.
봄볕이 따갑게 내리쬐었다. 지치고 시장할 즈음에 ’숲밥‘차가 도착해 길에 산나물 뷔페를 차렸다. 토산물인 시래기로 만든 국과 갖가지 나물 반찬을 담아 나무 그늘 밑에서 먹었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는 비무장지대로 진입하는 중임‘이라고 쓰여있는 팻말을 지나오면서 은근히 마음이 졸아들었던 우리는 야외에서 먹는 자연밥상 앞에서 긴장을 풀었다. 전투하던 군인도 이렇게 땅에 앉아서 식사할 때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을까. 전쟁 중이나 평화로울 때나 사람에게 먹는 일은 거룩하다. ‘숲밥‘을 먹으면서 나는 70년 전 전쟁의 포화 속에서 밥을 먹던 모든 군인을 위해 잠시 기도했다.
아직 앙상한 나무가 많았지만, 자작나무는 보드라운 잎을 내밀어 팔랑거렸고 갖가지 야생화가 피어 땅을 물들였다. 가지 하나에 홀로 피어서 외로운 홀아비바람꽃, 줄기를 자르면 빨간 액체가 나오는 피나물, 하얀 별 모양인 개별꽃. 붉은 머리를 산발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얼레지. 꽃은 말 안 듣는 아이처럼 제멋대로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폭포처럼 흐르는 계곡 가에 앉아 차가운 물에 손을 닦기도 하고 물통에 물을 담았다. 마실 수 있는 물이라고 했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물처럼 시원하고 달았다.
전망대에는 부부 소나무가 펀치볼 지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무자비한 살육전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 아름다운 땅이었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고 있는 밭의 경계가 유려한 곡선을 이루었다. 보드라운 싹을 낸 나무로 동글동글 부풀어 오른 야산과 아스라하게 하늘과 맞닿은 높은 봉우리가 분지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다.
전방의 풍경은 일주일 전 다녀온 남도와 아주 달랐다. 봄이 오는 모양은 분명히 비슷한데 다른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위도 차이 때문일까. 애써 잊었던 전쟁의 기억을 떠올려야만 하고, 산을 넘으면 두 나라가 무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선이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뢰가 묻혀 있는 아슬아슬한 땅에도 봄은 온다. 사람들은 그 땅에서 농사를 짓고, 밥을 먹고, 걷는다. 땅이 가진 위대한 힘이고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