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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용성 있는 산행

26산 강진 만덕산 (2021년 3월)

by Claireyoonlee

우리는 의사 결정을 할 때 ‘효용’을 고려하지만, 모든 결과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그래서 비교우위를 결정하려고 '지능'을 쓴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말하는 ‘효용 이론’이 인간의 뇌에서 정말 존재하는지는 살아있는 뇌를 해부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신경경제학’에서는 행복과 효용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진정한 '효용'은 유전자와 환경에 따라 계산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지능의 탄생≫-이대열

험한 석문산을 올라가느냐 지나치느냐, 만덕산 정상을 가느냐 가지 않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함께 가는 길을 선택했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크게 후회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진정하게 '효용성 있는 산행'을 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남쪽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겨울의 긴 침묵을 참다가 터진 봄의 함성이 가득했다. 나무는 헐벗어 무채색인데 호남의 밭은 초록으로 부풀어 올랐고, 매화가 하얗게 피었다. 강진까지 가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봄이 오는 산을 기대하며 마음이 두근거렸다.

만덕산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울퉁불퉁한 돌산인 석문산을 넘어 구름다리를 지나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산행에 도가 튼 친구들이 석문산행을 포기하고 조금 덜 힘든 여정으로 가자고 해서 고마웠다. 그래서 석문산은 구름다리에서 구경만 했다. 석문산은 차를 타고 끝없는 평야를 지날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뾰족하고 웅장한 바위산이었다. 남해를 바라보는 땅끝마을의 산들은 두륜산부터 석문산, 만덕산까지 험하게 이어져 있다. 석문산에는 이름이 있는 기암괴석이 많다. 세종대왕의 얼굴을 닮은 세종대왕 바위, 눈, 코, 입을 조각한 얼굴 같은 큰 바위 얼굴 같은. 이름을 듣고 나면 바위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구름다리를 건너자마자 노적봉 전망대에서 점심을 먹었다. 허기도 졌지만, 강진만과 가우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식탁 바위에서 먹는 도시락은 더욱 맛있었다. 가우도에서는 섬 인증을 하고 짚라인을 타고 바다에 떨어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고 친구가 설명해 주었다.

만덕산을 향해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면서 가쁜 숨을 고르면서도 자주 멈추곤 했다. 진달래의 분홍색 유혹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가느다란 가지 끝에는 사춘기 소녀의 가슴처럼 봉긋 솟아오른 봉우리가 앙증맞게 매달려 있었다. 추위를 견디느라 웅크리고 있던 산이 조금씩 기지개를 피면서 올해에는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까 궁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으로 살짝 배어난 땀을 식혀주는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이 고마워 목소리 좋은 친구에게 노래를 청해 듣기도 하였다. 초로의 나이에도 봄 처녀처럼 상기된 우리를 산은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만덕산은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412m) 바위로 되어있어 오르고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산의 고수들이 양보하여 정상을 가지 않고 쉬운 내리막길로 천천히 내려왔다. 반들거리는 초록 잎 사이로 붉은 점을 찍은 것처럼 꽃이 핀 동백나무가 길옆 숲속에 가득했고, 또 한 편으로는 청보리가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수확하기 바로 전쯤, 보리는 초록이 진해져 거의 청색이었다. 우리는 정상을 포기할 가치가 있는 길이라고 말하며 봄이 오는 들길을 걸었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을 간 강진에서 18년의 세월을 귀하고 “효용성 있게” 보냈음이 틀림없다. 조경에 관심이 많아서 만덕산에 있는 다산초당에 연못을 만들어 주변에 화초를 키웠다. 울퉁불퉁하게 땅을 뚫고 올라온 나무뿌리가 계단이 된 언덕을 오르면 작은 초가가(물론 지금은 멋들어진 한옥이지만) 있고, 직사각형 연못가에는 꽃을 머리핀처럼 달고 있는 여자 같은 동백나무 한 그루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친구 혜장 선사를 보고 싶으면 백련사에 올라가 차를 마시면서 선문답을 나누었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목민심서≫ 같은 책을 500여 권이나 썼다. 나는 연못가에 잠시 앉아, 유배하는 긴 시간 동안에도 힘을 잃지 않고 생각하고, 친구와 토론하고, 제자를 키우고, 유용한 책을 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일상을 상상해 보았다.


정상을 포기하는 바람에 하산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려 약간의 음료가 필요한 친구들을 위해, 또 왠지 언젠가 들른 적이 있는 듯 친숙한 마을을 둘러보려고 나섰다. 제법 큰 마을인데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찾을 수 없었다. 다산 박물관 근처에 있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담장인 집 앞에 어르신 한 분이 허리를 굽혀 땅을 일구고 있었다. 근처에 가게가 있냐고 물으니 뭐라고 답하는데 아 땅끝마을의 언어는 거의 외국어였다. 우리는 의사소통에 무진 애를 쓰다가 서로 웃었다. 꽤 널찍한 집에 혼자 산다고, 여든 살이 한참 넘었다고 말하는 어르신은 땅에 떨어져도 붉은 동백꽃처럼 활기가 넘쳐 보였다. 결국 가게는 못 찾았고 강아지와 고양이가 사는 카페에서 음료수를 샀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가 출발하기 전 남은 귀중한(산악회에서 가는 산행은 항상 시간이 촉박하다) 시간 동안, 마을 복판에 있는 정자에 앉아 초봄 산행으로 상기된 열기를 식혔다. 정상에 오른 것만큼 차오른 만족감이 주고받는 잔에 차올랐다. 뇌를 해부해보지 않아도 “행복과 효용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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