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산 영취산 흥국사 (2021년 3월)
남쪽으로 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졌다. 여수 돌산도의 봉황산 정상까지의 오르막길은 진흙투성이였다. 짙은 구름이 바다를 빽빽하게 덮어 다도해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래도 초목은 물기를 머금어 부활의 기쁨을 전했고, 벚꽃은 지고 나서도 세상을 떠나기가 아쉬운 듯 진흙 바닥에 연분홍 꽃길을 펼쳤다. 꽃이 진 자리에 피어난 새싹은 빗속에서 형광색으로 빛났다.
전국에 내리는 비가 모두 여수로 모인 것처럼 퍼붓는 비를 맞으며 봉황산을 오르고, 비를 피해 허겁지겁 점심 요기를 하고 나니 꾀가 났다. 그래서 영취산에 가지 않고 날머리인 흥국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절 구경이나 하자고 친구들 몇 명과 의견을 모았다. 구름이 많아서 높이 올라가도 진달래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사실 경사가 급한 산에 힘들게 오르고 싶지 않았다.
갓김치 가게가 줄을 이은 돌산도를 벗어나 진달래 축제 행사가 한창인 영취산 들머리에서 산행하는 친구들이 내렸다. 그리고 우리가 법흥사로 가는 길에서는 여수 산업단지가 보였다. 현대인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석유화학 공장단지다. 굴뚝에서 구름처럼 솟아오르는 하얀 연기를 보고 공해가 얼마나 심할까 했더니 요즘은 규제가 심해 많이 나아졌다고 기사님이 설명해 주었다. 기계와 연기만 보이는 산업 단지는 SF영화 배경같이 암울해 보였다.
그런데 차로 불과 오 분 거리에 공해 단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천년 고찰을 품고 있는 나지막한 산이 있었다. 산에는 여린 잎을 낸 활엽수가 가득해서 몽글몽글하게 연두색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흥국사는 정말 오래된 절이다. 오래된 대웅전, 오래된 불상, 오래된 탱화가 세상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해 왔다. 산에 올라가지 않아 무엇인가 놓친 것이 아닌가, 했던 우리는 우아한 절이 주는 평화로운 분위기에 단박에 매료되었다. 1,000 년 전에 세워졌으나 불타버렸고 조선 중기에 중건했다는 이야기와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을 단아한 글씨로 세세하게 남긴 비석(흥국사 중수 사적비)이 입구를 지키고 있다. 불교가 박해받던 시기에도 절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의 절박한 신앙심이 잔잔하게 전해졌다.
대웅전과 팔상전, 원통전 같은 절 안의 건물은 거의 400년이 되었고, 안에 있는 불상이나 탱화는 보물급이다. 보안 장치도 없이 문고리에는 Y자 나뭇가지만 걸려 있다. 나뭇가지를 빼고 살짝 들어가 보니 어둑한 신전에 보물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교교하게 흐르는 신성한 기운 때문에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했을까.
우리는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신이 나서 아무도 없는 절을 조용조용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그리고 잘 가꾼 철쭉이 핀 부잣집 정원 같은 원통전 앞 계곡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비가 많이 와서 불어난 계곡물이 우리보다 더 크게 재잘댔다.
흥국사에서 영취산 봉우리로 가는 길에는 돌무덤이 쭉 이어져 있다. 우리도 소원을 빌며 돌 하나를 얹었다. 돌을 얹는 친구의 표정이 간절해서 나도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정상에 올라갔던 친구가 내려오고 있었다. 우리를 위로하려는지 산에서 진달래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진달래의 계절은 지나간 모양이다.
산악회 버스를 타고 가면 늘 시간에 쫓겨 날머리에 있는 절을 들르지 못해 아쉬울 때가 많았다. 이번에는 산행을 포기하고 간 절이 예상 밖으로 볼만해서 다음에 또 산에 오르지 않고 절에서 땡땡이를 칠지 모르겠다. 어차피 가지 않은 길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한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다. 선택에 만족을 준 흥국사가 고마웠다.
저물녘 돌아오는 버스에서 보니 산업 단지의 높다란 굴뚝에서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올랐다. 이 공장들은 천년 후에도 불을 피워 올릴까. '나라를 흥하게 하는' 절 흥국사(興國寺)가 천년 후에는 또 어떻게 나라를 보호해 줄지 모르겠다. 인간이 만든 공장이나 절은 사라져도 부처님이 귀 기울인 절박한 소원들은 남아있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도 그곳에 한 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천년이 지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