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산 월악산 국립공원 (2021년 5월)
월악산 냇가에 두 마리 개구리가 살았다. 어느 날, 그들은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다른 세상이 있을까 이야기하다가 한번 가보기로 했다. 산은 가파르고 험했다. 월악산(月岳山)은 ‘산꼭대기 바윗덩어리에 달이 걸리는 산’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주봉은 영산(靈山)이라고 불렀다. 개구리들은 까마득하게 높은 신령스러운 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경사진 바윗길을 올라가 한 고개를 넘으면 그보다 더 높은 또 다른 고개가 버티고 있었지만, 기대로 잔뜩 부푼 그들은 폴짝폴짝 잘도 뛰었다.
숨을 고르며 바위를 타고 오르다 보면 틈새에 피어난 각시붓꽃이 환하게 맞아주었다. 노란제비꽃에게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멀었다고 했다. 진한 푸른색으로 무르익은 나뭇잎이 두 개구리가 천적의 공격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따금 첩첩이 쌓인 산의 물결이 사방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해도 이렇게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푸레나무는 복슬복슬하게 하얀 꽃을 피웠다. 북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는 우주의 중심에 있는 우주수(宇宙樹)라 신성하게 여긴다고, 나무를 잘 아는 개구리가 말해 주었다. 뿌리부터 잎, 진피까지 버릴 것이 없다는 이 나무는 높이 올라갈수록 더 무성하게 퍼져있었다. 숨이 차 크게 들이쉴 때마다 나무의 달큼한 향이 그들의 가슴을 채웠다. 철쭉은 주근깨가 깨알같이 박힌 연분홍 얼굴을 ≪빨간 머리 앤≫처럼 당당하게 내밀고 있었다.
개구리들은 힘들 때는 서로를 격려하고, 이전에 살던 곳에서 보지 못했던 나무와 꽃,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의 너울거리는 능선에 감탄하면서 산을 넘고 넘었다. 드디어 산꼭대기에 펼쳐진 널따란 바위에 도착했다. 움푹 파진 웅덩이에는 물이 알맞게 고여 살기 좋아 보였다. 그들은 힘들었지만 올라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등산객들은 웅덩이에 사는 두 마리 개구리들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이 작은 개구리가 거의 1,000m가 되는 봉우리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언제부터 살았을까 시끄럽게 떠든다. 자기들도 올라왔으면서. 오히려 사람들은 뭐 하러 높이 애쓰고 오는지 개구리들은 알 수가 없다. 그들은 힘겹게 올라와서 표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가기 바쁘다.
산 위에 사는 개구리들이 모르는 등산객들의 낭만이 있기는 하다. 산에서 내려가다가 계곡에서 뻐근한 근육통을 풀고, 물놀이하면 동심으로 돌아간다. 산 밑 가게 앞 평상에 앉아 방금 딴 향 좋은 두릅 전을 안주로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낭만도 있다. 이런저런 살아 온 이야기를 하던 그들은 오월의 신록처럼 빛나는 청춘을 보내는 중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산이 쩌렁대게 웃는다. 한때 함께 한 공간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단체 사진 속에 있는 그들의 풋풋한 얼굴은 낯설다. 모두의 마음에 잠시 과거의 일들이 섬광처럼 휙휙 지나간다.
개구리들은 신선이 앉았다 갔을지도 모르는 ‘신선암’에서 알을 잔뜩 낳고 잘살고 있다. 그 알이 부화해 어른이 되면 또 다른 높은 곳으로 가고 싶을지 모른다.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등산객은 절대로 알지 못한다. 자신의 미래는커녕 과거에 있었던 인연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니 말이다.
깊은 산이 둘러싼 고요한 마을에 어스름이 내리니 산 위 개구리들이 편안할지 등산객은 걱정이 된다. 신령한 산이 그들을 잘 보호해 주겠지만.